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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작업노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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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파편으로 나뉘어있어서 한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일겁니다. 하지만 확대해서 보이도록 만들 때는 규격화 된 모눈종이 속에 배열된 모습으로 있어서 '논리적일 것 같은 한 장면'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추상적인 희망의 감각이 비슷하기 때문인데, 평소에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한번에 체득되는 감각도 아닌것이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것 같더군요. 원체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개인인지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순서를 통해 희망을 깨우치는것 같습니다. 사소하지만 질서정연한 경험들, 속수무책으로 뒤흔들리는 삶의 저울질 속에서 일관되게 논리적으로 흘러가는 사유가 쌓여서 희망을 예감케합니다. 확대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원하는 크기만큼 끌어내어 인쇄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은 공허하게 파편..
인간성과 합리성, 이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며 응당 사람은 인간다우며 좋은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악수를 두게 하는것 같기도하다. 기대치가 높으니 실망과 좌절이 커지고 이에 대처하는 것인지 극복하려는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감정적인 논리를 펴게 되는.. 그런 악순환. 그렇다고 전문명적인 야만의 상태, 비문명 시기에 살아가던 생존마저 위협받던 그런 때를 낙원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많이 좋아졌고 많이 문명화 되었지. 그런데 그게 어설프게 논리라는 것을 쫓아가며 구축된 것인지 그냥 야만의 결과가 초래한 고통이 너무 커서 그걸 피하다보니 이렇게 된건지 구분이 또 잘 안된다.
파랑은 정치적인 색이다. ------ 그리고 형광은 야만의 색이다. 형광이 빛을 발광시키는 과정을 보며 흥미롭다고 느꼈어요. 밝은 낮의 가시광선을 흡수하고, 자외선이라는 특정한 조건에서 다시 머금고 있던 빛을 발광시킨다는 점이 제가 어렴풋하게 느끼던 야만의 속성과 닮아있었습니다. 야만이란, 문명화 되어가며 비문명 상태를 지칭하려고 나온말일겁니다. 당장 프로이트의 저서 제목만 보아도 '문명과 야만' 이니까요. 사회, 규격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조직된 체계인 사회는 밝은 대낮같이 느껴집니다. 모든것이 분명하고 미지의 것이 숨을곳 없이 밝게 드러나있는 곳 같아요.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에 비해 야만은 정체불명의 두려운 어떤 속성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유독 밤이 두렵고..
반지하텍스트 많은 작가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하고있는 작업 행위가 어떤 것인지, 예술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걸 예전에는 조형 요소, 색, 덩어리감, 존재감, 질료, 물성과 같은 개념을 막바로 구현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답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럴듯한, 작업같은 존재감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나'에 대한 생각을 쭉 하고있습니다. 종합되지 않고 단일한 논리와 구조로 통합되지 않는 동시대 예술을 보면, 작가 개인의 개념과 세계관 하나하나가 예술의 부분을 이루고, 예술이란 용어의 정의는 없으며 총체상만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술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방향이 되어 작업활동을 하고 그러한 경험이 ..
사진을 정리해보니 '현상'들에 정말 관심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상이 보여주는 원리가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과 닮아있을 때 놀랍다. 사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니까, 자연을 넘어서 통제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겪는 일들 보게되는 당황스러운 광경들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으레 그런 '현상'일수도 있다 싶었다. 하지만 왜? 라는 물음은 삶의 고통을 쉽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극복하기 위한 '어떻게?' 라는 질문도 안심할만큼 완전한 방법을 찾아주진 않는다. 왜? 와 어떻게? 라는 물음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이 왜 끓을까? 100도가 되어가는 물을 어떻게 안 끓도록 만들까? 라는 질문이 나에게 없듯 왜 이런 부조리가 있을까? 어떻게 부조리를 없도록 만들까? 라는 ..
不幸自慢 (불행자만 / Fuko Jiman) 空軍に入り 察???肌 飛んで降って大?若い衆酒?なら?って吐いて不幸自慢 愛と云う?成の?念?っていい加減失せろハッタリ?ます余裕を?モラに投じろよ 常時お前は被害者に模して?って要は若い衆思うならヤッて出して 不幸自慢 屈折や冒?に倚っ懸って芸と呼んで格好善いお召し物にポ?ズ執って演じりゃ良い いいたい、まあいいたいあたしは全然?係無い ファックオフ 死ね (fuck off g men)쿠군니하이리 Check Learn Color 톤데훗테타이가이와카이슈슈란나라욧테하이테不幸自慢(fuck off g men)아이토유키세이노가이넨 탓테이이카겐세로핫타리 카마스쥬오타츠 모라니토지로요히죠노오마에와히가이샤니모시테쿳테유우와카이슈오무우나라얏테데시테不幸自慢(fuck off g men)쿠세츠야 보우도쿠니 욧카캇테게이..
덕수궁 대한문 앞의 꽃밭은 후줄근하였다. 그 자리가 누군가의, 어떤이의 죽음을 기리는 분향소였음을 짐작하기 힘들만큼 엉성하고 후줄근한 모양새로 꽃밭이 있었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서..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는 극복될 수 있는 무엇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본가 혹은 노동자 혹은 둘 다도 아닌 사각지대, 이 중 한곳에 발을 걸치게 된다. 역할은 나뉘어지는데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자본과 밀접하여 필연적으로 권력구도를 인간관계에 끌어오게 된다. 공존을 위해 균형잡힌 관계와 보호를 실천하고자 하지만 번번히 세계는 합리성 앞에 공존을 위한 이념들이 깨지고만다. 과연 인간은 평등한 것인가? 쌍용자동차 노동자 사태는 오래된 이슈이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다. 처음 접했을 때는 노..
내년 전시의 주제가 유토피아가 되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개념으로, 용어로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삶을 관리해나가는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한 면면이 많아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된다. 때로는 시스템이 부조리를 구조적으로 생산하기도 하는데, 이를 교묘히 눈가림하여 체계의 모순을 덮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막상 '이상적인 세계' 를 상상해보면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그렇다고 부조리한 삶의 단면들을 마구잡이로 들어낸 세계 또한 유토피아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유토피아를 상상해보고 구성해보는 과정을 통해 본인은 오히려 난무하는 여러 불합리함, 모순을 삶의 본래 모습으..
주워온 통나무들 말고도 구부린 합판, 벽돌, 수건, 현수막과 같은 물건들을 하얗게 칠하였다. 나무들은 각각 , 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꼬여 있는 합판은 와 같은 이름들을 붙여줄까 생각중이다.이런 식으로 표면처리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낀것은 아마도 소영씨 글때문이 아닌가 싶다. 학부시절 같은 수업을 들었던 서양화과 후배분인 소영씨는 유독 좋은 글들을 보여주었다. 글을 읽다보니 소영씨 작업들이 강하게 기억될정도로 말이다. 이후 남들은 밑천을 드러내는 SNS에서도 종종 소영씨는 긴 글을 써올렸었는데 대부분 끝까지 읽고 또 몇몇은 스크랩해둘만큼 문장들이 좋았다. 그중, 사포질하는 모습을 이어만든 영상에서 나레이션으로 나왔던 '...사물마다 강도가 달라서 같은 사포로..
그러니까 지금은.. 내년 1월에 있을 개인전 주제를 찾아가며 작업하고 있었어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하고있는 작업 행위가 어떤 것인지, 예술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걸 예전에 학부시절에는 조형 요소, 색, 덩어리감, 존재감, 질료, 물성과 같은 개념을 막바로 구현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답을 찾아갔었어요. 지금 다시 한번 돌아온 예술은, 작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생각하면서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나'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떠오릅니다. 종합되지 않고 단일한 논리와 구조로 짜여지지 않는 동시대 예술을 보면, 작가가 예술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방향이 되어 작업활동을 하고 그러한 신체적인 경험이 다시금 작가의 예술에 대한 정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