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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구 스크랩]계몽의변증법_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YISUP 2014. 7. 18. 17:46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의 무기력한 투영에 그치려 하지는 않는다. 예술 작품 속의 모든 요소는 현실로부터 차용해온 것이지만 진정한 예술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지양된 무엇을 만들어낸다. 이 무엇이 '타자'이며 '비존재자'로서 진정한 예술은 이를 통해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과 행복을 예감케 한다. 

-44P, 각주


예술 작품과 주술의 공통점은 이들이 세속적인 현존재의 관계망에서 벗어난 '독자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영역'을 설정한다는 점이다. 이 영역에서는 특별한 법칙이 지배한다. 주술사가 의식을 행할 때 먼저 신성한 힘들이 작용하게 될 장소를 주변 환경과 구분짓는 것처럼 각각의 예술 작품은 현실과 구별되는 폐쇄적인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예술은 영향을 포기함으로써 외부 세계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주술과 구별되지만 그 때문에 더욱더 주술적 유산에 집착한다. 

-45P, 본문


모든 사유에는 부정의 계기가 있다. 사유는 직접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눈으로 본 그대로라는 주장은 사유의 의심을 받는다. 사유는 근본적으로 반권위적이다. 일단 시작된 사유는 내재하는 부정성의 힘으로 말미암아 조작이 불가능하다. 자기의 내적 법칙을 좇는 모든 사유는 계몽적 경향을 갖는다. 사유는 무언가를 구성하려 할 경우 경계에 부딪힌다. 사유가 멈추고 싶어하는 이 경계는 다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사유의 운동은 다시 시작된다. 세계 속에 무의미한 고통이 있는 한 사유의 만족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비동일적인 것'은 혹처럼 따라 다닌다. 

-48P, 각주


구원을 위한 담보물은 구원을 슬그머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어떠한 신앙도 거부하는 데 있으며, 이는 망상을 거짓이라고 고발하는 인식이다.

-52P, 본문


예전에는 파편적이 아닌 총체성, 즉 총체적 인식은 곧 진리이고 축복일 수 있었다면, 산업사회가 되면서 총체적이 된 사회는 개인이나 특수자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아도르노가 "전체는 비진리다"라고 말하듯이 이러한 사회에서 총체성이라는 진리는 비진리로 전환된다. 이런 이유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으로 쓰일 때는 총체적으로 번역했지만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전체주의적'이라는 역어를 택했다.

-54P, 각주


세계를 무, 또는 전체로 설명하는 것은 신화이며... '부정성'을 구원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기만에 대한 거짓된 저항이다. ...특정한 부정은 ... '절대자'에 대한 불완전한 관념, 즉 '우상'을 비난하는데 이것은 우상에 대해 그 우상이 충족시킬 수 없는 이념을 대결시킴으로써(변증법적) 이루어진다. ... 변증법은 형상의 고유한 특성으로부터 그 형상의 허위성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며 이렇게 함으로써 형상이 갖고 있는 힘을 빼앗아 그 힘을 '진리'에 귀속시킨다. 

-53P, 본문


아도르노에게서 사유는 곧 '특정한 부정'을 의미한다. 그는 전면적이 부정이나 무조건적 부정이 아닌 특정한 부정으로서의 비판적 사유만을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으로본다. 헤겔이 특정한 부정을 수단으로 하여 자신으 ㅣ변증법을 전개시키지만 결론에 가서는 긍정적인 전체를 만들어내어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든다면, 아도르노의 경우 특정한 부정을 통해 나온 결과는 긍정적으로 완결되지 않으며 궁극적인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것은 다만 비판으로서의 특정한 부정자체다. 모순에 대한 지적에서는 특정적이지만 결과는 불특정적 unbestimnt이다. 결과는 미래에 대해 열려있는 것이다.

-54P, 각주


여기에서는 어떤 이상적 세계나 무한한 세계가 구상되는데, 이 세계에서 대상들은 그때그때 불완전하고 우연한 것으로서 우리의 인식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방법에 의해 얻어진다. .... 물화된 사유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적 과정이 되어 이 과정이 만들어내는 '기계'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 결과로서 결국에는 기계가 자동화된 사유 과정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왜냐하면 계몽은 '실천'에 맹목적으로 이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주인이 되라는 요청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55P, 본문


계몽된 정신은 화형과 환형을 폐지하는 대신, 모든 비합리성에 대해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풍요와 기아는 서로 대립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체시키는 힘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이다.

-63P, 본문


시민적 상품 경제가 확대되면서 신화의 어두운 지평은 계산적 이성의 태야에 의해 환히 밝혀졌지만, 이 이성의 차가운 빛 아래서는 새로운 야만의 싹이 자라난다.

-65P, 본문


언어, 무기 그리고 기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하는 지배의 도구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 의해 접근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지배는 자신과는 상이한 계기인 '합리성'의 계기를 자신의 내부에 허용하게 된다.

-72P, 본문


파시스트들이 대안으로 내놓은 '사명과 운명'이라는 신화적인 거짓말은 일말의 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 담겨있는 진실은, 즉 기업가들의 행동을 지배했으며 파국으로 몰아갔던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객관적 시장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장의 의식적 결정은 가장 맹목적인 가격 메커니즘보다 더 강제적인 최종 결정이 되어 과거의 가격법칙과 자본주의의 운명을 집행한다. 

-72P, 본문


문명의 진보는 언제나 지배도 세련화시켰지만 동시에 지배의 제거에 관한 시각 또한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실제 역사가 제거 수단이 증가한다고 그만큼 감소하지는 않는 고통의 실에 의해 짜여진 피륙이라면, 고통을 제거하려는 시각은 '개념'에 의지한다.  

-76P, 본문


다른 한편 계몽은 예로부터 '훌륭한 통치 기술이었다. 그 적절한 예는 중국의 유교, 로마 제국, 나폴레옹, 그리고 세상뿐 아니라 권력에 관심을 보이는 교황권에서 볼 수 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보듯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자기 착각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인간을 통치하기 편한 왜소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진보'라는 이름하에 추구되었다.  

-81~82P,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