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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문구스크랩 _ 스펙타클의 사회 - 기드보르

YISUP 2015. 2. 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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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은 대상화된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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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은 엄청나게 긍정적인, 반박 불가능하고 접근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오로지 "겉으로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은 겉으로 보인다"고 말할 뿐이다. 스펙타클이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는 수동적 수용인데, 실은 스펙타클은 아무런 응답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신의 겉보이기 방식에 의해서, 즉 외양의 독점에 의해서 이같은 수동적 수용을 이미 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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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 속에서는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고 발전만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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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소유,로 명백하게 격하되면서 모든 인간적 성취는 새로운 정의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경제가 사회적 삶을 지배하게 된 첫 단계였다. ... 그리하여 모든 실제의 "소유"는 즉각적인 위신을 외양으로부터 끌어내야만 했으며 모든 개인적 현실은 동시에 사회적 권력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사회적 현실로 뒤덮여 변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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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은 활동을 관찰이라는 범주의 견지에서 파악하고자 한 서구 철학체계의 모든 취약점을 상속받았다. 이로인해 이 사유로부터 자라나온 정밀한 기술적 합리성의 끊임없는 확산에 기반을 두는 바람에 스펙타클은 철학을 현실화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현실을 철학화하다보니 각 개인의 구체적인 삶이 사변적인 우주로 격하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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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사회적 전문화, 즉 권력의 전문화가 스펙타클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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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의 관계들이 물신화 되었으면서도 순전히 객관적인 외관은 인간들과 계급들 사이의 관계들을 물신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스펙타클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관한 담화이며, 자신을 찬미하는 독백이다. 꼭 치명적 법칙을 따르는 제2의 자연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뵈지만, 스펙타클은 필연적 산물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결과도 아니다. 오히려 스펙타클의 사회는 기술도 내용도 선택한다. 만약 사회에서 어떤 과정이 이를테면 대중매체가 아주 중요하고 이를 배제하고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고 이를 꼭 거쳐야만한다면, 이것은 무척 일방적인 상황이며 체제의 통제 속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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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분어의 제도화, 즉 계급의 형성은... 신화적인 질서를 낳았다. 그리하여 모든 분리된 권력은 스펙타클적인 것이 되었다. (어쩌면 기존 체계와 사뭇 다른 형식으로 혹은 고정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지속적으로 목표와 과정을 재조립해가는 예술가의 삶과 방법은 스펙타클하지 않은 것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토록 불안정한 것인가? '탈' 상태이기에?) 부단히 분업을 기계의 독립적인 운동에 의해... 강화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생산성 향상 속에서 발전해 가는, 발전을 본질로 하는... 모든 공동체와 모든 비판적 감각은 이같은 운동의 와중에서 해체되어 있고, 분리과정을 통해 성잘할 수 있던 세력들이 현재 아직까지는 이 운동 속에서 재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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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생산이 분리된 것들의 생산으로서 성공한 데 힘입어, 원시사회에서는 핵심과제에 속했던 기본경험들은, 이제 체제의 발전이 최고조로 달한 현시기에 무노동과 비활동으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비활동이라는게 생산활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비활동이라는게 생산활동이 있기에 명명된것! 비활동은 철저히 생산활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생산 필수품들과 결과물들에 대해 어색하게 감탄하며 굴복한 형태가 되었다. 비활동 자체가 생산의 합리성의 산물인 것이다. (빈공간도 비슷한듯?)  ... 그리하여 현재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즉 여가의 증대는 결코 노동 내부로부터 이루어진 해방도 아니며 이런 노동이 창조하는 세계로부터의 해방도 아니다. 노동으로 인해 상실된 어떤 활동이 노동의 결과에 대한 굴복 안에서 회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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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은 세계의 통일성 상실에서 기원하고 현대적 스펙타클의 거대한 확장은 이 상실의 총체를 드러낸다. ... 스펙타클 속에서는 세계의 일부가 세계에 대해 자신을 표상하고 세계보다 우위에 선다. 스펙타클은 분리된 것을 재결합하지만, 분리된 상태 그대로 재결합한다. (속도를 늦추거나 우위를 향하는 가치를 전환하거나 방법은 바뀌어도 계속해서 발전한다는 것, 근본적인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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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자신을 생산하지 않는다. ... 생산의 성공, 그것은 이내 생산자를 소외시킨 박탈의 풍요로 되돌아온다. 우리한테서 빠져나간 힘들이 스스로의 위력을 우리에게 뽐낸다. (어쩌면 생산의 주체인 생산자 개인의 서사가 배제된, 생산품을 교환가치로 환원하여 용이한 가치교환이 원칙인 굳건한 체계가 지워가는 개인의 생산서사 혹은 생산신화가 - 이것은 노동의 신성함이 될수도있겠지 - 필연적인 노동자 혹은 노동의 소외를 가져온다. 그것이 스펙타클인가? 그것은 굉장하며 추구하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게하는, 그리하여 자연스러운 망각을 유도하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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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서 스펙타클은 소외의 창출을 고착화한다. 경제적 확장은 이런 특별한 생산의 확장이다. 스스로를 위해 가동되는 경제와 더불어 성장하는 것은 그러한 경제의 근원에 있었던 바로 저 소외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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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소비가능한 생필품이 항상 증가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면, 그 까닭은 생필품이 계속 결핍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생필품이 오로지 증가하기만 하고 그 증대를 멈출 줄을 모른다면, 결핍을 극복하기보단 풍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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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가치 하락의 경향, 자본주의 경제의 이러한 불변성은 생필품이 증가하는데도 결핍이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를 낳았다. 이 새로운 결핍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노동자가 되어 임금 획득을 끝없이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참여하지 않으면 굴복하거나 죽는것인데, 이로 인해 상품소비에는 환상이 일반적으로 껴있다. 상품은 이처럼 사실상 실재하는 환상이다. (기름때처럼 묻어있는 어떤 것?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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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은 화폐의 다른 측면이다. 화폐는 모든 상품들의 보편적인 추상적 등가물이다. 비교가 어려운 각기 다른 재화들의 교환 가능성의 표상이 되어 사회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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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의식과 의식에 대한 욕망은 동일한 부정의 형식으로 계급폐지와 노동자들이 한 활동들의 여러 측면을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추구하는 기획이다. 대립물로는 스펙타클 사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상품이 자기가 만들어 낸 세계 속에서 자신을 관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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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의 풍요 속에서 수행되는 허위적인 선택은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 투쟁은 양적이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허위적이고 해묵은 대립, 지역주의, 인종주의를 만들어내며 천박한 위계서열을 무슨 존재론적 우월성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논의를 진흙탕으로 만든다. 주로 청년과 기성세대 사이의 스펙타클적 대립이 허위적인 역할의 대표격인데, 이게 허위적인 까닭은, 삶의 주인인 기성세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동시에 청년과 젊음이 기존의 것에대한 변혁을 본질로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오히려 경제체제, 자본주의의 역동성의 속성이 그런 양상을 띤다. 사물들이 지배하며 사물들이 젊다. 사물들이 서로 대결하고 서로를 대체한다.

 

63

다양한 형태의 모든 소외는 억압된 현실적 모순들 위에 세워져 있다.

 

64

스펙타클은 본질적으로 관료제적 자본주의에 속한다. ... 관료제적 경제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은 의미있는 선택의 여지를 갖지 못한다. 관료제 자체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고 이를 위해 영구적인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강요된 선 the good의 이미지는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총체를 그 자신의 스펙타클로 감싼다.

 

71

스펙타클이 영원한 것이라며 제공하는 것은 모두 변화에 기반을 두고있고, ... 스펙타클은 절대적으로 교조적이지만, 이와 동시에 실제로는 아무런 확고한 교리도 이룩할 수 없다.


72

스펙타클에 의해 공언되는 비현실적 통일성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현실적 통일성이 의존하고 있는 계급분리를 은폐한다. 생산자로 하여금 세계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또한 그들을 이 세계의 건설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다. ...한층 심오한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또한 위계적인 수탈과 억압의 비합리성을 부양하는 것이다.


75

부르주아지의 등장에 의해 시작된 혁명시대의 계급투쟁은 역사에 대한 사유, 즉 변증법과 더불어 발전하는데, 변증법이라는 이 사유는 더 이상 존재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찾는데서 그치지않고,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해체에 관한 지식으로까지 성장하며, 그 운동 속에서 모든 분리를 해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