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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질문지

YISUP 2017. 6. 15. 21:36

공통질문 3.


그것은 무척 기분이 좋거나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일상적인 것을 놓치지 않고싶다는 마음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창작물을 보는 마음은 복잡 미묘합니다. 이것은 '창작'이라는 뚜렷한 자아를 가진 대상인 것인지,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자립하고 있는지, 방금 생성된 일상의 배설물인 것인지 혹은 차용인 것인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며 모든것이 최초인 순간에도 어떤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합니다. 작업을 지속하여 창작물을 만들고 그것을 외부로 발표하는 것은 당위에 대한 확신을 '그렇게 하고싶다' 는 확신이 앞지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는 때론 결과물을 어쩔 수 없이 완결지은 형태로 보고싶은 마음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과연 나 없이 작동하는 작업을 바라보게 되면 어떨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이곳, 사일삼에서의 발표는 '공간이 정말 좋다, 이곳과 나는 관련되고 싶다'는 마음이 솔직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일삼은 신도림역에서 대로변의 성인용품점을 지나 아파트단지를 거쳐 철공소와 작은 백반집들 사이 골목 속, (제가 처음 왔을 때는) 큰 진돗개가 앞을 지키고 앉아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주변이 시멘트로 덮여있고 쇠 자르는 내음,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모여있어 하늘이 잘 보이는 편임에도 왠지 둔탁한 공기를 가진 위치 속에 무럭무럭 자란 덩쿨들로 덮인 하얀 건물이었는데, 과연 이곳은 안전할까, 겨울이면 동파되는 수도관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나? 싶었구요. 어쨌든 몰래 드나들기에는 뻑뻑한 문을 열어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가파른 계단참을 오르면, 하얀 공간과 지붕이 삐겨들어와있는 작은 방이 나오는데, 이곳은 주인 없는 곳처럼 보여 드나드는 모든 인물이 제멋대로 생각하고 사유해도 될 것만 같았고, 또 놓여진 작품들이 주인행세를 할 수 있을것 같았으며, 그럼에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아 안전해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경찰력이 들어올 수 없어 시위대가 늘 진을 치고있던 명동성당 앞 언덕처럼요. 


재밌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밌어하기' 연습이 필요하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일상하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일상하기'는 도통 그냥 살아서는 잘 되지 않더군요. 매일 속에는 일상이 없고, 살고있는 이곳에는 삶이 없습니다. 그곳과 이 시간을 벗어나서 온통 다른 곳, 이왕이면 매우 독특한 곳으로 빠져나가야만 삶과 일상이 보이곤 합니다.

 '보통 한 시대의 냄새는 동물적인 후각을 잃지않고 있는 특이한 존재인 예술가에 의해 맨 먼저 맡아지고..'[각주:1]

이런 것은 저만이 아닌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매우 독특한 곳이 사일삼에 되어, 창작품을 이곳에서 발표하는 것은, 일상과 삶을 보이게 해주는 부끄러운 자극이 되고 그럼에도 좀 기분좋은, 다시 삶으로 복귀해서 잘 살아볼 수 있는 의욕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1. 김유동 <아도르노와 현대사상 일부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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