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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사일삼(413) 글쓰기

YISUP 2017. 6. 15. 21:12

413 글쓰기

세상은 왜 이렇게 아름답고도 폭력적일까, 그리고 궁상맞을까.

뭔가 배울때, 실기 수업들이 특히 그랬던것 같은데 참 점진적으로 늘지않고 계단식으로 훅- 훅- 실력이 향상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힘든것은 어떤 지점, 거기까지 도달하고자하는 욕망이 아닌 계단의 평평한 지점에서 서성이는 제 자신을 달래고 기다리는 일이었어요. 참 시간이 안갑니다... 그때는...

꿈과 희망, 살아가는 이유, 기쁨, 환희, 행복과 같은 단어들이 빈번하게 들리는 것을 보면 삶을 이끌어가는 이상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상에 끌려가는 것인지, 혹은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지 종종 헷갈립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저를 좌절시키기도 하고 생활을 다 뒤흔들어 바꾸어 놓고는 갑자기 증발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울만큼 행복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가지고 싶은것 이기도 하고, 통과하고 싶은 관문이기도 하며 사랑이거나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온갖 종류의 자잘한 이상들이 제 삶에 들어왔다 나가고, 솟아났다가 사라지고 가끔은 공허하게 저를 방치합니다. 그리고, 때안맞게 밀려들어온 이상들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서른을 앞두고, 역할이 바뀌고 많아지면서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는 바뀐 역할에 적응하며 일상을 쫓아가기에도 벅차서 불안감 이외의 감상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작업이 삶과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고 계단식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라면, 저는 지금 계단의 평평한 면에서 정신차리기 힘들어하며 한단계가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습니다. 지금은 시간은 참 잘 가는데 제 자신이 정말 안 움직이네요…

세상은 더럽고 복잡하며, 사는 방식도 사람마다 비슷한 듯 다른것 같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살고있을까요? 다들 작업을 하기 이전에 살아가는 사람인데, 무엇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버텨나갈까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살짝만 벗어나도 세상에 미술이라는 정체불명의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이 무척 드물고, 하물며 작가라는 신분은 더욱 드물며, 보편적인 삶의 형태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국도의 신호등은 대개의 경우 밤 12시를 전후로 점멸되고, 오전의 첫차는 4시에서 5시 사이에 시작되죠. 그 사이 해가 떠있는 낮 시간 동안 사람들은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 사용하였던 시멘트와 에폭시, 각종 각목과 자재들은 처분할 때마다 특수폐기물 혹은 신고 수거 대상물이 되었어요. 이제 작업실을 잠시 비우고 가정집에서 일상과 작업을 병행하게 되며 나에게 중요한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신기하게도 제 주변의 부모님, 친구들, 먼 친척들은 이제야 제가 편안해지고 안정되었음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제가 지난달에 결혼을 하였거든요.) 무언가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이상이란 어떤 것인지, 삶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보통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길래 이런 인사를 받는 것일까 싶었습니다. 때아닌 축하와 늘어난 역할들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 한결 빠르게 달려가는 일상, 고요하게 무언가를 바라보던 시간들, 다양한 사유를 시도해보았던 나날들, 그리고 그것이 펼쳐져있는 미술, 다른 작가의 작업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매일의 안녕을 기원하던 지난날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요즘에는 매일 어떻게 해야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할까, 아침에 무엇을 먹을까 생각해요.

어쩌면 그러한 이상, 희망, 즐거움 같은 것은 제 안에 있는 변치않는 무엇이 아니고, 멀리 외부에 있는 무엇 아닐까요? 제 삶은 중심없는 풍선처럼 세계를 따라 자유롭게 혹은 계획처럼 떠도는데, 제가 외부의 이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저의 삶이 어디에 있더라도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려고 하는것 같아요. 이런 시도들은 좌절되거나 실패하지만 어쨌든 눈을 떼지 못하니 지속적으로 시선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위치한 지점에 따라 이상은 조금씩 다르게 보이겠죠? 그래서 매번 혹은 매일, 희망이나 삶에 좋은것은 어떤 것인지 찾게됩니다. 사회가 복잡한 사건들로 정신없을 때는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고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이며 무엇을 희생해야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고,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를 망치고 병들어갈 때는 어떤것이 사랑인가, 무엇이 사람을 살게하고 힘들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제 삶의 구심점은 스스로가 아닌 외부의 무엇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이라는 운동을 지속해서인지 무척 피곤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느 곳으로 흘러가더라도, 삶이 어떤 이상을 향해 휘게 마련이고, 저 또한 그 대상을 찾아내고 바라보고자 계속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요.

지금은 유부녀 - 라는 색다른 삶의 단계에 접어들어, 원래 가지고 있던 시선의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고, 작업을 통해 쫓아가던 희망은 벌써 사라졌거나 원래 그곳에 없었던 마냥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그때는 일상을 충실히 관찰하고, 작은 움직임과 인상을 그러모아 삶의 원동력이 될 법한 단서를 포착하는 일에 몰두되었는데, 이제는 도통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매일을 살아가고, 항상 오늘의 안녕을 바랍니다. 이제는 그것이 고단한 나의 손을 보며 떠오르고, 반복되는 설거지와 빨래접기, 그리고 세탁기를 돌리는 일, 내가 발디딛는 곳 구석구석을 닦는 행위들에서 떠오릅니다. ‘가족’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책임감 없이 살아도 되던 이전의 삶에서 ‘일상’에는 없었던, -그렇지만 늘 일어나고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제 일상 속에 매일 터져나옵니다. 이제 일상도 가족도, 삶도 희망도 그 모양과 정의, 작동하는 구조가 모두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일련의 동작들, 변화들을 다시 저에게 불러모아 눈으로 보이도록, 그래서 안심하고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상 움직임 연습 - 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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