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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T_독일빈집점거운동

YISUP 2015. 1. 29. 09:05

http://blog.jinbo.net/ou_topia/249

 

ou_topia님의 [적법, 불법, 똥은 마찬가지] 에 관련된 글.

 

스폰티스(즉흥행동주의자), 슐라피스(기성세대가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비판하는 기성세대거부자), 카오텐 (질서를 모른다고 비판하는 기성세대가 쓰는 말). 새로운 청소년.청운동의 심리적, 정치적 전망(Spontis, Schlaffis und Chaoten. Psychologische und politische Perspektiven der neuen Jugendbewegung)

 

칼-미샤엘 쿤쯔(Karl-Michael Kuntz)

 

빈집점거는 정치계주류와 서독의 다수를 이루는 다소 보수적인 기성세대에겐 불안한 것이고 자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사실은 명백하다. 즉, 빈집점거는 거주공간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들의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종이쪽지에 불과한 정책과 요구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옮기는 대안운동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시도임과 동시에 그 결정체다. 또한 젊은 유권자의 지지로 가능했던 녹색당 혹은 ‚다색리스트‘의 [선거에서의] 약진은 기존3대정당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렇게 빈집점거는 삶, 사회, 민주주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토론과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야기된다. 왜 지금까지 박력 없다는 냉소를 받아왔던 청소년.청년들이(Schlaffis) 빈집을 점거하고, 아주 다양한 대안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됨에도 불구하고 병역을 거부하게 되었는가? 왜 하필이면 빈집점거가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출발점으로 대두되었는가? 빈집점거와 시간적으로 평행을 이루면서 아니며 내용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정치운동이 단지 타다 금방 꺼지는 짚불에 불과한 것인가? 주류 정당은 불이 꺼질 때가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운동“이 식어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질 때까지 문제를 질질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가? [기존체제에] 순응하는 보수다수와 새로운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대안주의자들간 이념적 차이가 얼마나 깊고, 근본적이며, 견고한가? 이들간 소통과 공존에 있어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한마디로, 대안운동에는 어떤 원인, 의미, 그리고 미래전망이 있는가?

 

이 글에서 대안운동의 특수한 성격을 스케치하고, 대안운동의 동기를 아브라함 매스로우의 욕망모델에 기대에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발전가능성을 스케치해 볼까 한다.

 

대안운동은 다양한 흐름과 프로젝트그룹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평화운동, 반핵운동, 여성운동, 폐가점거수리운동, 도시의 거주지역주민운동, 자율관리 청소년센터, [심리]치료그룹, 시민권운동, [자율적인] 유치원 등 말이다. 동시에 아주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인 흐름들이 합류하여 대안운동이 들끓는 역동성을 지니게 한다. 공동행동, 집결장소, 공동매체 등으로 이어져 있는가 하면 아주 섬세한 뉘앙스 차이로 서로 간격을 두거나 내용을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시민인니시어티브와 같은 그룹에서는 주류사회의 기구들과의 관계가 매우 유연하고 유동적이다. 수많은 그룹이 중점을 달리하여 다양한 타개대상을 설정하고,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를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가치관에서는 몇몇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장주의신봉(Wachstums-Fetischismus), 자연을 착취하고 인간소외를 야기하는 과대한 소비, 최첨단으로만 치닫는 기술[문화], 후견으로 행세하는 관료주의 등의 거부에는 통일되어 있다. [긍정적이 면에서] 그들은 다 사회적이고 개별적인 자기실현, 내적 정신적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 개발 및 발휘에 찬성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대안주의자들에게는 „존재“가 „소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정서Grundstimmung)는 특히 빈집점거에 명백하게 가시화된다. 건축물을 보존하여 자원과 노동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것을 방지한다. 거주공간을 수리.복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개발하고 자기실현적인 노동을 한다. 돈 지랄하고 돈 드는 사치대신 요령을 살린 창조성이 들어선다. 자율적인 자기노동으로 타율적인 노동을 줄인다. 동시에 빈집점거는 인간의 기본욕구, 즉 지붕아래 살려는, 물질적으로 보호된 공간에서 살려고 하는 욕구에 역행하는 소유권제도를 멀리하고 경멸한다. 마지막으로 빈집점거는[파괴적이지 않고] 형성적인 항쟁을 가시화하는데 몇몇 되지 않는 가능성의 하나다. 군비확산, 원전, 고문, 검열 등 구체적인 경험세계에서는 가시화되지 않는 다양한 폐해와 위협에는 시위 외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반면 거주공간을 파괴하는 것은 점거 후 복구.수리를 통해서 부조리한 짓이라는 것을 백일하에 들어나게 할 수 있다. 점거 후 복구.수리해서 사는 사람들을 내쫓는 행위는(원전설립을 위한) 토지를 보호할 목적으론 경찰을 투입하고 거주공간을 스스럼없이 파괴하는 것은 내버려두는 이치에 어긋나고 반인간적인 시스템의 자세를 빼도 박지도 못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이럴 때 어쩔 수 없다고 매번 등장하는 „사태적 강제“가 허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은 정치인들이 만든 법과 세제로 가능하게 된바, 역시 그들이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법률가들은 [„그런걸 어째“하는] [하버마스의 감초인]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normative Kraft des Fakischen)을 관철하는 데는 도가 터 항상 그 근거를 마련하는 길을 찾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실천적인 관철력, 즉 이론의 실천가능성을 백일하에 드러나게(anschaulich) 하는 빈집점거운동이, 관성적인 형태를 넘어선 실천형태가 대대적인 공.동조를 받으면서 정치적 영역에서까지 성과를 이룩하게 되었다.

 

과반수 이상의 독일시민이, 정확하게 51 %가 여론조사에서 빈집점거에 동조한다고 대답했다. 이 여론조사는 보수적인 엘리자베트 뇔레-노이만 교수가 소장인 알렌스바흐 여론연구소가1981년 초에 실시한 것이다. 31%는 이해가 안 간다고 대답하고, 18%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좋을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중략] 마침내 전통적으로 국가권위에 허리를 굽히는데 익숙한 시민이 최소한 „출입금지“란 푯말이 서있는 잔디밭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관대하게 보게 된 것이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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