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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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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주

YISUP 2015. 1. 25. 21:57

4중주[편집]

四重奏 콰르테트(quartet, Quartett)라고도 하며, 4개의 독주악기로 하는 중주이다. 18세기 말엽부터 이러한 종류의 것이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화성적 음악이 융성해진 데에도 관계가 있다. 피아노(또는 쳄발로)가 있는 것과, 이런 종류의 악기를 넣지 않고 멜로디 악기만으로 된 것이 있는 점은 다른 중주의 경우와 같다. 피아노가 있을 경우에는 현(바이올린, 비올라, 쳄발로)을 동반하는 피아노 4중주가 가장 보통이나, 한편 바이올린 대신에 오보에 같은 관악기를 사용하는 4중주도 있다. 피아노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의 가장 많은 예가 현악 4중주이다. 그 밖에도 관악기만으로 하는 것, 관악기와 현악기로 하는 것 등 그 편성은 다양하다. 이 밖에 4종류의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색소폰 4중주 등도 있다.

현악 4중주[편집]

絃樂四重奏 2개의 바이올린에 비올라와 첼로를 더한 편성이다. 같은 계통의 현악기만으로 편성되어 있으므로 음질에 안정감이 있고, 4성부(四聲部)이므로 화성적으로도 충실한 이상적인 형태라 하겠다(화성은 4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리하여 하이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4중주는 많은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다. 그 중에서도 19세기 후반 이후로 현악 4중주는 작곡가의 실력을 발휘하는 대상으로 된 것 같은 경향마저 보인다. 그 이유는 현악 4중주에서는 작곡기법의 약점이 단적으로 나타나므로 카무플라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악 4중주의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고 또한 막연하다. 하이든을 그 창시자라고 부르는 일도 적지 않으나, 실은 그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 역사는 현악 4중주곡의 역사와 병행하여 말하게 된다. 현악 4중주는 적어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남부독일, 북부독일 등에서 교향곡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제각기 별도로 시도되었다. 그 때 특히 문제된 것은 통주저음의 텍스처와 쳄발로 등을 사용한 현실적인 연주양식의 폐지 및 각 성부의 독립적이며 대등한 진행, 4성부의 밸런스와 조화의 기법이었다. 이탈리아나 조금 늦게 남부독일 등에서는 4성의 교향곡이 18세기 전반에 연구되었으며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바로크 시대에 전성을 보인 트리오 소나타가 발전한 형태로 대위법적인 4중주곡이 즐겨 작곡되었다. 그리하여 통주저음에서 해방된 것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나 산마르티니, 북부독일의 텔레만이나 파슈 등의 작품에서 이미 볼 수 있었으나, 그래도 그 뒤 얼마 동안은 첼로를 왕년의 통주저음의 성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첼로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활용된 것은 1780년에 이르러 작곡한 하이든의 작품에서부터였다. 한편 이러한 4성부의 밸런스에 관련하여 중성(中聲)인의 취급에도 초기의 4중주 작곡가들은 골몰한 듯하다. 왜냐하면 현악 4중주의 트리오 소나타에서는 이러한 중성부의 악기는 없었으며 역시 1780년대에 와서 하이든에 의하여 비올라가 겨우 중요한 사명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시도 속에서 최초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프랑츠 메 리히터(1709-1789)를 빼놓을수가 없다. 리히터는 만하임에서 일하고 있던 시기의 끝무렵(1767년에 만하임을 떠남) 이미 6곡의 4중주곡을 쓰고 있었다(작품 5). 그런데 이미 1761년에는 보케리니의 작품1의 4중주가 있고, 그 이전에도 하이든의 작품1과 작품2가 있으며, 또한 삭키니의 작품과 프냐니의 작품 등도 현악 4중주의 형태로 악보가 인쇄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작품에서는 통주저음의 전통에서 완전히 해방된 텍스처를 보였다고는 할 수가 없으며, 실제의 연주에서는 각 성부 하나만의 4중주의 형태가 아니라 현악합주의 형태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관현악 4중주(Orchester- quartett)라 하는 것은 이러한 곡을 말한다. 하이든의 작품1이나 2와 같은 것도 실제로는 현악합주 형태로 연주되었다고 추론(推論)되고 있다. 거기에다 하이든이 4중주(Quartett)라는 명칭을 제명(題名)으로 한 것도 1780년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이러한 이른바 콰르테트 이전의 하이든의 4중주곡은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喜遊曲)라 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리히터의 작품5는 4중주 초기의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4중주곡은 1780년부터 1790년에 걸친 10년간에 특히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하여 실내악적인 완성된 형태의 것이 되었다. 한편, 하이든의 초기 출판업자 등이 Quatuor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쇄한 것은 반드시 4사람이 연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4성의 곡이라는 정도의 뜻이었다. 그후 베토벤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현악 4중주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현악 4중주곡은 중요한 작곡 분야로 되어 낭만파시대에도 즐겨 작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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