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의 지금, 여기 - <서울 데카당스-Live>
글_성지은
데카당스 decadence
1. 쇠퇴, 타락, 퇴폐
2. (지나친) 방종, 방자함
3. (문학, 예술상의) 데카당스 (19세기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퇴폐적 사조, 경향)
1. 2014년 3월 22일과 23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한 공장 옥상에서는 <서울 데카당스-Live>라는 이름의 공연이 상연되었다. 서울에서 매년 봄마다 열리는 <페스티벌 봄>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 공연은, 무언가 기묘하다. 옥인 콜렉티브의 2013년 작품인 <서울 데카당스>의 확장판이라고 하는데, ‘데카당스’에다가 ‘Live’가 붙는다. 함께 만든 사람들은, 연극 <9일만 햄릿>의 배우와 연출가들, <서울 데카당스>의 주인공(?)이었던 박정근, 인디밴드 ‘쾅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최태현, 그 외 두 명의 퍼포머.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있는, 날 것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라이브 공연의 특성 상 이 이틀이 이 공연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상연의 증인이 되기 위해 3월 22일 공연장을 찾았다.
2. 1940년대에 세워진 이 공장 건물은 현재 18개 업체 뿐만 아니라 <인디아트홀 공>이라는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문래와 영등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구 가게들, 작은 공장들, 그 사이에 끼어있는 구멍가게들을 지나니 꽤 넓직한 마당을 가진 공장부지가 나타났다. 마당이라고 해 봤자, 그 안에 가득한 것은 폐타이어나 상자들, 철골들이다. 입구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구석에서 분진 마스크를 쓰고 스텝 명찰을 목에 건 사람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편평한 판대기에 아슬아슬하게 만든 계단이 2층의 <인디아트홀 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올라가서 티켓팅을 했다. 스텝은 분진 마스크를 건네주었고, 실내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스텝이 옥상 공연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지시하는 대로 분진 마스크를 쓰고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넓은 옥상의 가운데에는 플라스틱 상자를 뒤집어 만든 객석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왼편에는 생산1과, 생산2과, 자재과라고 쓰여진 낡은 팻말이 붙어 있는 옥탑방 같은 공간이 있었다. 한눈에도 이 옥상이 오랫동안 쓰여지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갈 정도의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날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왠지 모르게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서는 나이든 공장 노동자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에는 마스크를 안 주었다면서요?” “주긴 줬는데, 돈이 아까우니까. 좋은 것도 아니고 아주 얇은 것으로 일주일에 한 개만 줬어. 매일 손수건을 약품에 적셔서 마스크 안에 넣었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안 할 때가 많았지.” “그래도 건강이 괜찮으셨어요?” “그 때는 젊어서 아무렇지도 않았어.” 곧이어 한켠에 놓인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노이즈가 흘러 나왔다. 공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고층 아파트의 전면이 시야 가득 펼쳐졌다. 이제는 기능을 멈추어버린 기다란 공장 굴뚝이 높다란 아파트와 경쟁하듯 하늘로 내달리고 있었다. 노이즈는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3. <서울 데카당스-Live>의 중심은 기타회사인 콜트콜텍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연극 <9일만 햄릿>의 배우와 연출가가 연극 연습을 ‘라이브’로, 그러니까 우리들 앞에서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노이즈가 그치자 연출가 매운콩이 나와서 관객들 앞에 네모난 무대를 그렸다. 그리고 연극에서 햄릿의 삼촌인 클라우디우스 역을 맡은 이인근씨가 나와 <햄릿>의 한 장면을 무대에서처럼 연기했다. 이어서 연출가가 등장해 배우의 연기를 교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사 한 줄 한 줄을 짚으며 그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연기해야 하는 것인지 함께 이야기했다. 클라우디우스의 연기는 점점 변화했다. 한참을 그렇게 다듬고 최종적으로 연기를 했을 때, 이인근-클라우디우스의 말은 대사에 따라 오르내렸고 시선은 힘이 있었으며 관객들이 마치 햄릿의 한 등장인물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두 번째는 오필리어 역을 맡은 임재춘씨와 권은영 연출가 팀이었다. 마찬가지로 대사 하나 하나를 짚으며 의미를 살폈다. 임재춘씨가 너무 긴장한 탓인지 계속 딱딱하게 대사를 외우니, 연출가는 배우를 데리고 옥상을 한 바퀴 뛰고는 자연스럽게 숨을 뱉으며 말하는 것을 가르쳤다. 아무래도 오필리어의 감정이 살아나지 못하자, 연출가는 배우가 처한 복직 투쟁이라는 상황을 통해 감정이입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한 가지각색의 생생한 연습을 통해 임재춘-오필리어의 연기도 변화했다.
▲ 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Live>, 퍼포먼스, 2014
‘변화’는 <서울 데카당스-Live>를 아우르는 주제이다. 이 모든 ‘공연’들은 파토스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완성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변화’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의 모체(?)인 <서울 데카당스>의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하다. 2012년 sns에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을 쓰게 된 박정근씨는 여러 차례 재판정에 나가야 했다. <서울 데카당스> 역시 박정근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한 전문 연기지도자가 박정근과 마주보고 앉아, 법정에서 읽을 글을 읽어보게 하고 그 어조와 손의 제스처, 호흡을 함께 고친다. 마치 그 글이 연극의 대본이고, 법정이 무대이며, 박정근은 배우인 것만 같다. 한 시간 여의 연기수업이 끝나자, 박정근의 말은 좀 더 설득력 있게 변해 있다. 이 변화를 목격하고, 마침내 인정했을 때, 관객은 재판이 결국 하나의 연극임을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의 모든 관계들은 일종의 연극이며, 따라서 개인의 연기가 실제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단채널 영상, HD, 2013
<서울 데카당스-Live>는 전작처럼 ‘변화를 보여주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간단한 유비 관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관객이 일차적으로 만나는 텍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인 <햄릿>이고, 변화를 보이는 것은 <햄릿> 배우들의 연기이다. 1600년에 쓰여진 텍스트와 2014년의 공연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유비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햄릿>이라는 텍스트보다는 그 세부들을 살펴보면, <서울 데카당스-Live>의 기저에 흐르는 교묘한 중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하는 클라우디우스나 미쳐버린 햄릿을 바라보는 오필리어의 마음 말이다. 이 사소한 부분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클라우디우스와 오필리어의 변화가 아닌 다른 존재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콜트콜텍 부당 해고 노동자들이 8년간 복직 투쟁을 하면서 겪은 변화이다.
이인근-클라우디우스의 연기연습은 슬픔과 권위를 보여준다. 임재춘-오필리어의 연기연습에서는 아버지의 오랜 투쟁과정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모든 연습이 끝난 후, 원래는 기타 공장 노동자였던 두 명의 배우는 의자에 앉아 연출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오랫동안 투쟁하면서 이렇게 연극도 해 보고 밴드도 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뭔가, 변한 것 같으세요?” 이 질문에 대해 내심 엄청나게 달라졌다며 예술의 위대함을 고백하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고, 뭐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복직 투쟁, 연극과 밴드 등의 문화운동, 노동운동, 가족 등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얼굴에 오필리어와 클라우디우스의 모습이 겹쳐졌다. <서울 데카당스-Live>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변화’는 결국,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후 복직을 위해 여러 사람들과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갈 일터마저 없어져 버린 이들이 오랫동안 몸으로 겪은 ‘변화’가 아닐까. 우리가 미처 관심 갖지 못 했고 사실 상상하지도 못 할 변화. 이렇게 <서울 데카당스-Live>는 <햄릿>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9일만 햄릿>을 액자로 삼아 그 안에 미세한 ‘변화’를 보여줄 장치들을 심어 넣었다. 모든 말들이 끝나고 다시 시끄러운 노이즈-음악이 허공을 가득 메울 때, 이 변화는 얇게 흐르는 물처럼 옥상 바닥에 차올랐다.
▲ 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Live>, 퍼포먼스, 2014 (사진_박정근)
4. <서울 데카당스-Live>가 보여주는 ‘변화’는 ‘장소성’과 맞물려 증폭된다. 이 공장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만큼, 너무나도 강력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 위치는 더욱 더 환상적이었다. 앞과 뒤는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었고, 관객들은 그 중 가장 큰 아파트를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었다. 공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최태현의 ‘소음-음악’은 아파트를 향해 날아가 부딪혀 메아리가 되었다. 두 명의 검은 퍼포머들이 들고 있는 거울이 그 반사를 보여주고 증폭시키는 듯 했다. 공연이 끝날 무렵의 괴성-음악은 공연을 통해 격앙된 감정과 함께, 아파트가 상징하는 자본과 권력의 힘을 향해 소리 지르는 듯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언짢아진 주민이 나와 항의하기를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인디아트홀 공> 내부
자기 자신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한 공간에는 어떤 작품을 가져다 놓아도 그 분위기에 잡아먹혀 마치 ‘소품’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옥인 콜렉티브는 이곳이 예전 공장이었다는 점을 활용하여 <9일만 햄릿>의 맥락과 연결시키면서 동시에 이곳에 ‘살아있는’ 작품을 집어넣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존재감이 컸고, 매 순간 순간의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객의 역량은 작았다. 아마도 힘 센 공간과 흡입력 있는 라이브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형식은 이 작품을 ‘장소특정적(site-specific)’으로, 그리고 ‘참여적(participatory)’으로, 또는 ‘관계 미학적(of relational art)’으로 보이게 만든다. 작품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히 그 안에 빠져들 수 있게 이끌었지만, 동시에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작품 제작 과정을 알지 못하지만, 옥인 콜렉티브는 이미 ‘작가’와 ‘기획자’의 중간 어드메에, 그러니까 작가-기획자 또는 기획자-작가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작품의 매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포스트미디엄 시대의 동시대 미술에 있어서 작가는 이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꾸려내는 사람’이 된 모습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획자, 즉 큐레이터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 작품의 순전한 질보다는 ‘기획력’이듯이, 옥인 콜렉티브가 증명해야 하는 것도 ‘기획력’일까. 큐레이터의 전시에서 매 회 마다 관심사와 참여 작가와 구체적인 작품의 결이 달라지듯이 <서울 데카당스>와 <서울 데카당스-Live>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 각각의 내용과 형식, 감성도 달라지고, 그렇기 때문에 옥인 콜렉티브에게서 미술작가의 ‘자기 참조성’을 발견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되는 것일까. 옥인 콜렉티브가 몸담고 있는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중이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들에서 계속해서 ‘데카당(décadent)’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당스" - 어떠한 문화나 사조가 정점을 이룬 후 물질적, 정신적으로 쇠퇴하면서 퇴폐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그 무렵의 정서. 아름다우면서도 가난하고 형식적이면서도 타락한 모습. 옥인 콜렉티브가 설명하듯이, 21세기, 아시아,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투명한 사건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시공간을 메우고 있는 정서는 데카당이다. 옥인 콜렉티브가 분명하게 증명하고자 하는 유일한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데카당스’의 ‘지금-여기’일 것이다. ■
* 사진출처 *
1, 3, 4, 5, 6, 7, 8 _ 옥인 콜렉티브
2, 9 _ 성지은
오늘날 데카당스는 명백하게 예술 밖에 있다. 데카당스한 현실에 대적하는 ‘헛기술’로 이루어진 이 공간 / 무대에서 옥인 콜렉티브는 한 청년 철학자의 질문을 생각한다. ‘앞으로의 사람들은 무엇에 희망을 걸고, 어떻게 환멸감을 이겨내면서 나아갈까’
<서울 데카당스-Live>는 콜트콜텍 노동자 연극 ‘구일만 햄릿’의 거울 버전이다. 그간 옥인 콜렉티브 작업은 게스트, 친구, 동료, 협력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초대하면서 이루어지곤 했다. 박정근, 임한창의 반즉흥 퍼포먼스를 기록한 <서울 데카당스>에 이어 <서울 데카당스-Live>에서는 ‘구일만 햄릿’의 배우인 이인근, 임재춘 그리고 이 연극의 공동 연출인 진동젤리의 권은영과 매운콩을 캐스팅한다. 햄릿의 귀환을 기다리는 ‘구일만 햄릿’의 주인공들과 폐공장을 무대로 벌이는 장면/해프닝들은 본래의 공연 이전과 이후,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며 새롭게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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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옥인 콜렉티브
각본: 옥인 콜렉티브, 진동젤리
출연: 이인근, 임재춘, 권은영, 매운콩
퍼포머: 이한솔, 임상아
음악감독: 최태현
사진: 박정근
의상협찬: 치명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