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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1

YISUP 2017. 5. 29. 15:16

효율성 자체가 신화가 된 사회를 살고있다.


너무 마를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싫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왜 자꾸 마르라고 하는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르라고 한 적 없다. 잘먹고 건강하게 살아" 라고 하겠지. 그치만 저 "싫어"를 말한 사람의 말은 정확하게는 이것 같다. "그냥 마르라고 하지말고 지금 정도의 나를 잘먹고 잘살게 해. 내가 모델인데 너가 나를 먹여살리지 않으면 나는 말라야한다고. 싫어 근데. 그러니까 지금의 나를 먹여살려"


권위와 권력관계가 은밀하게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요즘에는 자유롭게 잘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좋다. 그럼에도 "지킬것은 지키기" 위해 수많은 대화와 댓글, 복사 붙여넣기, 퍼오기, 아고라, 판, 대자보, 현수막, 자유발언, 촛불이 등장하였다. 내가 이러한 발언을 처음 본것은 교과서나 노조의 투쟁이었다. 초등학교가 성당안에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이 진입할 수 없는 성당 부지에는 늘 투쟁의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온갖 플랫폼에서 이제는 발언이 등장한다. 무엇을 위해? 간혹 나도 모르는 논점이 툭툭 튀어나온다.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으로 오래 살았는데, 이제는 '진보'할 방향이 너무나 많아져서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아졌다. 나도 어느새 몰라서 바보처럼 보수가 되고 설득될 말을 내뱉는 나이가 되었다.


아무튼 공간 혹은 플랫폼이라 하는 발언의 장, 그것이 기능하도록 하는 영역은 숭고한것 같다. 


솔직하게, 마른모델을 계속 선호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지나친 경쟁에 대한 문제의식,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쭉 제기 되어왔다. 멍청한 구조와 도대체가 말귀를 못알아듣게 되어버린 세대갈등 탓에 뭐하나 해결된 적은 없지만 어쨌든. 문제라고 생각은 했을 것같다. 세대갈등 지역감정 정말 지긋지긋하다. 너무 병신같은 부분이라 손댈 도리도 없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이상한 소리를 하잖아.


그런데 내게는 해결이 난감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나는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면서 우아한 삶이란 어떤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였다. 이전 신분제 시절 귀족처럼. 왜 자꾸 열심히 살라고 하는것인지,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하는가, 대충 살면 정말 망하나?


망하겠지.


생존이 목적이 되지 못하는 인간 삶이 최선을 다한다거나 내부적인 경쟁을 잃게되면 딱히 살아갈 목표를 가지기가 힘들수도 있겠다. 그렇다고해서 교환가치를 상징하는 돈을 편히 쓸수도 없고. 내가 그럼 가치가 없는데.


살아가는 것으로 결정을 한 이후에는 인식, 삶, 행복, 희망, 형광, 야만, 밤 등등의 이야기를 끌어왔다. 나는 작업으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작업이 무엇인지 알아야했고, 작업을 하는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있는 곳은 어떤 곳이며,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계속 존재하는 것은 왜 어떻게 확신할까?


나는 매일 밥을 먹고, 부모님과 투닥거리는 시간들, 나를 키운 최초의 여성이 된 엄마를 보며 투사하는 감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살것이다, 잘 될것이다, 기대, 희망, 시간들, 흘러가는 하루하루와 신년 행사, 카운트다운..


세계는 더럽고 복잡한 곳이 맞지만 저러한 행사와 신나는! 현장들이 자주 이곳을 잊게 하였다. 잊지 않고 피부로 느끼더라도 나는 종종 이 세계에 나를 붙드는 수많은 요소들에 접착되어 탈락되지 않을 수 있었다. 때때로 잘 먹는것에 집착하거나 이뻐하는 어르신들과 있다보면 세대차의 격변의 현장에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먹고, 먹고, 배가 불러서 가끔은 고통스러운데에도 먹어야했다. 그럼에도 먹는것을 종용하는것이 괴로웠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은 그러한 삶을 살고 시간을 보냈던 것이었다. 여자들은 특히, 밥을 먹이는 존재였던 것이다. 왜? 


그리고 이렇게 현실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상상을 하며 살아도 나는 무시할 수 없는 몇가지가 있었다. 동생. 영우의 혼란?


동생이 처음 엇나갈때 나는 내가 "엇나간다는" 것의 정의를 이렇게 분명하고 진부하게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동생을 대하는 나를 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근간에 가지는지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술을 추구하지만 평범한 삶을 도달했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밥을 먹는 것이 약간 어려워질 즈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무수히 탈락시키고 비난하던 이 사회에서 탈락없이 계속 재활용되거나 쉽게 오늘의 나머지가 내일로 인도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음식이 그러했다. 음식은 남기면 안되기 때문에 남은것을 입안으로 털어넣어야 했고 오늘 남은 음식은 내일 먹고 또 음식물 쓰레기는 재활용되었다. 음식은 왜이렇게 탈락없이 계속 활용되는거지. 그래서 설거지는 상당히 숭고한 느낌을 주었다. 주방일, 주방도구, 먹고 사는 것에 직접적이고 먹는 것에 이보다 직접적인 도구가 있을까, 삶을 이어가는 직접적인 도구인데 그것을 활용하는 행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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