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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강연회 느낌, 글 _ 현대미술의 홍어맛 : 반이정(미술평론가) 본문
세마에서 하는 강연회에 신청하여 다녀왔다. 옛날옛적에. 반이정 선생님은 아스코에서도 보고 심사위원(?) 비슷한 자리에도 많이 가셔서인지 이름이 익숙했고 심지어 얼굴도 알고있었다!
어쨌든, 강연회 내용은 무척 재밌었고 대중강연에 알맞게 구성된 내용, 관객이 될 사람들이 혹은 미술에 관심있거나 미술을 '보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듣고나면 작품들과 작가, 현대미술의 방향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즐거웠다.
그리고 평론가분들을 뵌적이 한번도 없어서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 닮아있고 또 어떤면에서 작가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반이정 선생님 강연을 들으며 다소나마 궁금증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홍어, 고르곤졸라와 같은 특별한 미감, 대중과에 소통이라는 한때 유행한 키워드에 대한 관객, 작가, 평론가 각 입장에 대한 솔직한 이해, '비주류'취향에 대한 의견, 패션쇼에 비유한 점 등은 정말 똑같이 했던 생각이라서 기분이 좋기도하고(내가 헛다리 짚은건 아닐지도몰라!)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였다.
짜장면도 있고 스테이크도 있고 비빔면도 있고 쭈꾸미볶음도 있다. 호텔뷔폐도 있고 패밀리레스토랑도 있고 무한리필고기집도 있고 바닷가에서 구워먹는 조개구이도 있다. 노자가 말하길 먹고 자고 싸는게 중요하다고................ 여튼, 먹는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미감이라는 감각이 비교적 공정한 자극이기 때문에 큰 견해차나 의견충돌이 없는것 같다고 생각했었다.(혹은 내가 잘모르는 분야라 그럴지도.) 먹는 것은 신성하다. 누군가 배고파 라면을 먹더라도 욕하진 않고 누군가 특별한 입맛을 가지고 있어 마요네즈를 밥에 비벼먹어도 욕하진 못한다. 비싼음식, 좋은 음식을 먹고 맛있어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맛없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의 지위격차가 과연 그것이 음식인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드문것 같다. 라면도 음식이고 참치회도 음식이긴 한 것이다.
이러한 취향차이가 분명 미술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예술이라고 해서 예술이 아니거나, 순수예술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저것은 예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예술이다. 삶도, 행위도. 대중예술도 잡지도, 낙서도 작품도 미술관도. 단지 "??? 예술" 이라 이름붙일 정의가 조금씩 다를뿐.
아무것이나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저것도 예술이냐? 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전제하는 '예술'이라는 용어가 매우 한정적이고 좁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누구나 예술가가 될수 있다' 라든지, '이것도 예술이다' 라는 키워드가 경우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문장에서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용어가 또한 제한적이고 좁은 의미의 예술이기 때문인것 같다.
무엇이든 예술이고,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공허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술별로 가진 고유한 특수성과 개성과 개념, 존재방식과 각 예술작품이 사용하는 예술언어는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해, 광고와 작품은 다르다는 것이다. 둘 다 예술이지만, 의도와 언어방식, 존재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취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초,5초라는 짧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광고와 7일, 한달 때로는 몇달씩 같은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똑같은 방식과 같은 시간을 들여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엇은 더 중요하니 잘보아야하고 저것은 덜중요하니 대충 조금만 보아도 된다, 는 소리가 아니라, 몇시간씩 우려내는 사골국 만들듯 라면을 끓여내면 안된다는 말이다. 각기 예술품이 요구하는 방식과 방향을 따라가야 제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예술 작업을 하며 겪었던 일들 중 쉽지않았던 일들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 부모님, 친구들, 연인... 내가 가장 신경쓰는 그들이 하는 말. 나를 이해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해주면 고마울것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말들. 들었던 말들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몇개 있다.
- 아니 그게 무슨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고생하면서 해? 그냥 하지마.
- 그냥 상어나 하나 가져다가 잘라놔. 그럼되잖아.
- 난 순수예술들이 난해하게 말하고 그러는게 너무 싫어. 난 예술이 그럴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딱봐도 알수있게 쉬워야해.
특히 마지막 세번째말은 디자인 공부하는 친구가 했던 말인데, 그녀는 내게 순수예술이 지나치게 난해하며 그러한 난해함을 이해해달라고 강요하거나 잘난체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싫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저렇게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그녀가 나는 더 폭력적으로 느껴졌고, 본인이 싫었기 때문에 '예술' 전체가 그럴필요 없다는 식으로 강요하는것이 무척 불편했다. 다양성. 개성을 존중해주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개인이 가진 취향을 이해해주고 뭐라하지 않는것. (성과는 모르겠지만)열린교육 시대를 지나온 89년생인 나에겐 취향에 대한 존중과 개성의 추구가 당연한 일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이기 때문에 일반론처럼 몰아가 저 친구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의 생각이 이랬기에 저친구 말이 짜증이 났던건 사실. 심지어 본인도 특별하며 '남들과 다른' 감각있는 개성의 디자이너가 되고싶어했으면서 어떻게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난해하다'고 싸잡고 딱봐도 알수있는 예술로 예술 개념 전체를 통일해야한다는 엄청나게 폭력적인 생각을 하는걸까? 이쯤되니 그냥 그 친구는 너무나 진부한, 잘나가고 싶지만 잘 모르는건 걍 덮어놓고 까는, 식의 친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격적으로는 나쁘지않고 공부도 잘하는 똑똑한 친구라 생각했는데 공부잘하는 것과 반성하는것은 별개인듯. 아무튼 나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어차피 난해함이 큰 장벽이되어 살기힘들고 척박한게 현실인 순수미술인데 뭐하러 이렇게까지 본인앞에서 무시하는 말을해가며 돌을 던지나? 그런 난해함이 가져오는 소통의 부재, 외면, 때론 이런 욕먹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떤 일을 하는것인데. 심지어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피해는 거의 없지 않는가? 대기오염을 시키나, 음식물쓰레기를 배출하나, 뇌물을 받나, 입장료를 받나?
그렇지만 과연 예술, 그중에서도 욕먹었던 난해한 작품들이 그렇게 '비주류'이며 '특별한 취향' 인지는 요즘 고민이 많이 된다. 무슨일이든지 남들보다 더 집중하고 또는 집착하면 다른사람들이 보지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것이고, 다른사람들이 미처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아내게 된다. 작가들은 미술비전공자가 보통은 고민하지 않는 주제를 고민하고, 보통은 고려하지 않는 해결책을 찾아보고, 보통은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사고하여 보는것 같다. 모더니즘 이후 전복하고 전통에 도전하는 성격이, 그 자신(미술)을 부정한 이후에도 쭉 이어져오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폭로하는 움직임이 이어져왔기 때문일까? 이런 부분 때문에 과격하게 말하다보면 무척 쓸모없고 효용을 미리 따져볼수 없고,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작품들은 종종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성과 합리성이 강화된 현재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다. 효율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사회와 삶을 구성하려고 하지만 인간에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길 기대할 수 있는가? 많은 문제와 사회의 부조리, 입법과정과 발의안들을 보다보며 과연 합리성과 효율성의 추구를 옹호하여주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는지 의문이다. 개념 그대로의 합리성, 효율성, 논리성을 따라간다면 또 모를까, 절대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일 수 없는 인간이 저런 개념을 추구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믿다보니 온갖 불합리한 불행들이 도처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여튼, 이런 지점에서 반성하고 고찰하여 보는것, 4대강 파는 일처럼 큰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닌 이상 한번 고찰하여 보는건 긍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효율성과 합리성이 지배하지 않는 논리 방식으로 사고하고 작품을 만들고 집단화도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고요하게 외치는 작품들이 바라보고 집중하고 있는 내용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 바라보고있는 내용을 심화해서 담을 뿐. 그렇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되고 '변화'라 할만한 일은 물결하나조차 일으키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선동할 수도 있는 급격한 변화 대신에 아주 오래걸리는 사유와 고찰을 작가들이 선택한다면, 그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난해한 방식으로 걸어오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작가들 역시 고민중일 것이라는 점, 혹은 확신하는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더라도 나에게 강요하진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을 들여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