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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스크랩 _ 임민욱 본문
2010년 10월 22일,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를 가다.
오후 3시경, 호사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모두 함께 지하철을 탔다. 도착하자 마자 보인 것은 커다란 천막들과 건물, 그리고 잘 정돈된 산책길이었다. 건물로 들어가서 가장 처음 본 작품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작가의 <프리미티브>와 <나부아>이었는데, 영상과 책,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이 흥미로웠다. 두 번째로 감상한 작품은 임민욱 작가의 <손의 무게>였다. 어떤 작품인지도 잘 모른 채 들어가 시작되는 영상을 보기 시작했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음악이 하루 종일 우울해야 했던 내 감정과 함께 호흡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재생되는 화면과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14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망각한 채 그저 멍하니 작품에 집중했다. 그렇게 약간은 몽롱한 상태로 다음 작품인 <끝없음의 끝>과 <러브싯>을 보러 자리를 옮겼지만 두통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잘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다 에릭 판 리스하우트 작가의 작품부스가 보이길래 무심코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품의 이름은 <섹스는 감상적이다> 이였다. 미리 제목을 봤었더라면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건 작품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 작품을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였다. 영상 속에 나왔던 기발한 콜라주와 정지 영상 애니메이션은 신선하고 새로웠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몇 장면과 내용들이 불편해서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상황을 피하기 보단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에 꾹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엔 더욱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부스를 나와버렸다. 작품을 관람하는 나의 부족함과 미성숙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취향의 차이인 걸까. 다시는 접하고 싶지 않은 갈래의 작품이었다. 그 외 본 작품은 더글러스 고든 작가의 <내 당나귀와 함께하는 고행>, 김순기 작가의 <우물을 들다>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임민욱 작가의 <손의 무게>. 열 감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온도의 차이로 새롭게 그려진 도시의 모순과 균열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느리지만 걷기를 멈추지 않던 사람들의 걸음이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좀비의 움직임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또 영상 속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자를 사람들이 손으로 들어 운반을 하는 장면을 위에서 바라봤을 때 여자가 공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장면 장면마다 담겨진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블랙홀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임 민 욱 (1968 - )
대전 생. 현재 서울에서 거주, 활동 중
minouklim@gmail.com
학력
1995 파리 제1대학 조형예술학과 졸업 (학사)
1994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 DNSAP 펠리치타시옹 졸업(석사)
1985-1988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재학중 도불
기금 및 수상경력
2010 아르코 국제교류지원기금, 한국
2009 경기문화재단 작품 지원기금, 경기도
2007 제7회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 서울, 한국
2006 제6회 광주 비엔날레 재단상 광주은행상 수상, 광주, 한국
1995 프랑스 알베르 로슈롱 재단상, 파리, 프랑스
1996 프랑스 갤러리 협회 첫 개인전 지원기금, 파리, 프랑스
개인전
2010 꼬리와 뿔, 임민욱 개인전, 갤러리 플랜트, 서울
2009 SOS-Adoptive Dissensus, 퍼포먼스 (페스티벌 봄), 한강유람선, 서울, 한국
2008 점프 컷,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0 주관적 이웃집, 인사미술공간, 서울, 한국
1999 스크린 드럭스, 갤러리 인더루프, 서울, 한국
1997 임민욱-제너럴 지니어스 갤러리 라 페론느리, 파리, 프랑스
1997 임민욱-제너럴 지니어스 갤러리 베로니끄 스마그, 파리, 프랑스
단체전
2010 시선의 반격, L'appartement 22, 라바, 모로코
2010 ‘Touched’, 리버풀 비엔날레, FACT, 리버풀, 영국
2010 ‘Trust’, 미디어시티 서울 2010, 경희궁 분관-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2010 Art is Action=Action is Production, A project for La Tabacalera, 마드리드
2010 ‘The River Project’, 캠벨타운 아트 센터, 시드니, 호주
2010 ‘Morality’_Remembering Humanity, Witte de With, 로테르담, 네덜란드
2010 ‘Griot Girlz’, Kunstlerhaus Buchsenhausen,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2010 ‘A Different Similarity’, 보쿰 뮤지엄, 보쿰, 독일
2010 ‘랜덤 액세스’,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경기도
2010 ‘Move on Asia’, PARA/SITE ART SPACE, 홍콩
2009 ‘시선의 반격’ 두산아트센터, 서울,
2009 ‘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휴스턴 미술관, 미국
2009 ‘Everyday Miracles(Extended)’ 레드캣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미국
2009 ‘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2009 ‘The Unconquered’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 뮤제오 타마요 현대미술관,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9 ‘Everyday Miracles(Extended)’ Walter & McBean Gallery,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미국
2009 CREAM-요코하마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요코하마, 일본
2009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순회전 귀국전, 과천국립현대미술관, 한국
2009 악동들, 지금 여기, 경기도 미술관, 한국
2009 텍스트@미디어,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09 A Different Similarity, Santral Istanbul, 이스탄불, 터키
2009 메이드 인 코리아/ 휴가_위장된 노동, Sinn Leffers, 하노버, 독일
2009 (Im)migrants With(in), Open Space_Zentrum fur Kunstprojekt, 빈, 오스트리아
2009 Move on Asia-비디오 아트의 종말, 갤러리 루프, 서울, 한국
2009 Socially Disorganized’ Experimental Art Foundation, 아델라이드 영화제, 호주
2008 Invisible Cities, 토론토 국제 아트페어, 캐나다
2008 제 7회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길위에서, 광주
2008 전향기-김수영 추모전, 대안공간 풀, 서울
2008 Cine Forum 4 : Digital Portfolio - 6 Views, 서울대 미술관
2008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순회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미술관(MNBA), 아르헨티나
2008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 평화공간 개관 2주년 기금 마련전, 서울
2008 Permanent Green, Isola Art Center, 밀라노, 이태리
2008 제 1회 친나이 영화제, 인도
2007 APAP 2007 제2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안양
2007 우발적 커뮤니티, Gallery 27 계원조형예술대학, 한국
2007 An Atlas of Event, 굴벤키안 재단, 리스본
2007 City_net Asia 2007, 아시아 현대 미술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007 제 10회 이스탄불 비엔날레-Not Only possible But also Necessary, 이스탄불, 터키
2007 Activating Korea: Tides of Collective Action, 고벳-브루스터 아트 갤러리, 뉴플리머스, 뉴질랜드
2007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 순회전, 칠레 산티아고 현대 미술관(MAC)
2007 Tina B. 프라하 현대미술페스티벌, 체코
2007 창원 아시아미술제, 성산아트홀, 창원
2007 PILOT:3 Live archive for artists and curators, 베니스-Giudecca, 이탈리아
2007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전,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2007 KIAF 특별전, “Mr.C can’t have...”코엑스, 서울
2007 서울여성영화제, 아트레온, 서울
2007 비디오인서울, 미로스페이스, 서울
2006 Somewhere In Time,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6 제 6회 광주비엔날레, 마지막 장-길을 찾아서, 광주
2006 사춘기 징후, 로댕갤러리, 서울
2006 공공의 순간, AFI 대안공간 네트워크, 서울
2006 Be Patient, Otherwise Cry, e-flux, 앤트워프, 벨기에
2005 나의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쿤스틀러 하우스 무종트롬, 프랑크푸르트
2005 e-flux video rental film festival , 인사미술공간, 서울
2005 Parellel Life, 프랑크푸르트 쿤스트페라인, 독일
2005 Cosmo Cosmetic, 갤러리 스페이스 C*, 서울
2005 내일이 와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여성사 전시관, 서울 2004 전단지 프로젝트, “이것은 연애편지가 아닙니다”, 소갤러리, 문예진흥원, 서울
2004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일주아트하우스, 서울
2003 서울의 8가지 템포, 도시의 경험과 상상력전, 몬테비디오 네덜란드 미디어 아트센터, 암스텔담
2000 넥타이부대의 점심식사 전, 포스코미술관, 서울
2000 슈퍼 코리아 엑스포 전, 동경 빅사이트 서관, 동경, 일본
2000 강경- art,history, images, 한림미술관, 대전
1999 사진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19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믹서 & 쥬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서울
1999 LES FAITS, 갤러리 라 페론느리, 파리, 프랑스
1998 도시와 영상: 의,식,주 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7 SELEST’ART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 쎌레스타, 프랑스
협업, 아트디렉팅, 워크숍
2008 제4회 다문화축제, 세계시장 바자르 천막디자인, 서울 올림픽공원
2007 청계 디자인센터 워크숍 기획 (플라잉시티 주관), 서울
2006 '피켓' 퍼포먼스, 춘천 국제 마임축제, 아티스트 벼룩시장
2006 City Break, 리버풀비엔날레 워크숍, Static, 리버풀, 영국
2005 인사미술공간 피진 아카이브
2005 Noah- No War 퍼포먼스, 제1회 시계평화축전 아트디렉팅, 임진각
2004 하자 시민문화 플랫폼 SCRAP, 서울 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2004 롤링스페이스 컨테이너프로젝트 LOST?,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2003 피진 콜렉티브 창립
출판
2006 피켓, 비폭력 저항 메뉴올, 하자센터
2005 스크랩북, 컨테이너프로젝트, LOST?,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2004 가리봉동투어, 피진 콜렉티브, 대안관광 가이드북
2000 Rolling Stock, 광주비엔날레 출판물
<출처: 임민욱 작가 홈페이지 http://www.minouklim.com/>
네이버캐스트 <한국인> '문화적 충돌로 전복을 꿈꾸다.'- 미술가 임민욱
2009년 페스티벌 봄 <S.O.S-Adoptive Dissensus> 프로젝트 진행작가 임민욱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광주비엔날레와 에르메스에서 수상을 하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굵직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다보니 그녀는 미술 전문잡지 기자로서 모르면 안 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중 하나이다. 게다가 필자가 꽤 자주 찾던 인사미술공간에서 잠깐씩 마주친 적도 많았는데, 여자치곤 훤칠한 키에 밝은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가 임민욱 작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다. 2007년, 당시 신사동에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었던 아뜰리에에르메스(에르메스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 전시 공간)을 찾았을 때였다. 작품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를 설치하던 작가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다. 작품에 몰입한 상태여서일까, 작가는 그 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작가가 했던 말 중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의 ‘전복적 지점’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그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가끔씩 그 말을 혼자서 곱씹게 되었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여러 가지 일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면 임민욱 작가의 그 말이 떠올랐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일까’하고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인터뷰를 할 때도 작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인 남편 사이에 둔 딸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에게 나누어준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아온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임민욱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에는 한국인, 여자, 미술가라는 기본적 조건부터 외국인 남편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미술대학의 강사 등 사회적인 맥락이 함께 얽혀 있다. 작가가 아니라도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는 누구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상황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대적 가치와 규율의 아이러니한 충돌과 교란 앞에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일 것이다.
임민욱의 작품은 그가 한국인으로서 줄곧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 프랑스에서 체류했고, 지금도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 세대는 새마을운동 같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주인공이고 여전히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깊이 남아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갈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세대적?문화적 갈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감하고 애매한 상황, 즉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상실감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이를 뒤집기도 하는 잠재적 어휘로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의 주요 모티프는 그러한 그녀의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뉴타운고스트>는 그가 살고 있는 영등포 지역에서 이뤄졌고, <테너와 고구마>는 2004년 당시 그가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던 하자센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뉴타운 고스트>는 2005년 영등포로터리를 기점으로 재개발 대상 지역에서 펼쳐진 프로젝트다. 확성기를 든 한 명의 래퍼가 드러머와 함께 트럭을 타고 누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외 주요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작품에 드러나는 우리 삶의 단면이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임민욱은 그녀의 주변인을 작품 속에 종종 등장시킨다. <잘못된 질문>, <스무고개-‘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에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작가의 딸이다. 특히 <제4회 다문화축제>에 천막 디자인을 의뢰 받아 참여하면서 만든 <스무고개>는 다문화축제 현장을 배경으로 이주와 노동, 차별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딸의 시선을 통해, 혹은 “질문)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간다. 나는 낮은 곳에서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 / 보기) ①피 ②혼혈 ③잡종 ④튀기 ⑤해당 없음” 같은 스무고개를 통해 집단 속의 개인, 외국인들 사이에 또 다른 이방인을 바라보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혹은 글로벌사회의 첨예하게 드러나는 호명(呼名)과 경계 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야기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만 느껴지는 관계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일 수 없는 역사들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 지 거리 두면서 바라보려고 한다. 즉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어떻게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지를 더듬으면서, 무언가의 이면, 또는 양가적 측면을 들춰내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게 삶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해서일까, 그의 작품은 표현 방식에서도 이중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에 등장하는 피켓은 ‘ON’을 가리키기도 하고, 뒤집으면 ‘NO’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영상 작품을 보여줄 때도 2개, 3개의 화면을 제시하여 관객들이 같은 상황이라도 다면적으로 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다. 고인 물위에 물감을 풀어 놓은 뒤 수면 위에 우연히 맺히는 모양을 종이에 찍어내거나, 형광색의 우레탄이 제멋대로 부풀어 굳는 식이다. 의도하지 않은 대로, 다시 말해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음을 시각화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동시에 큐레이터 김선정이 지적한 바 있는 ‘운동성, 역동성’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다른 문화 사이의 교차나 시차에 주목한다. 전시장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며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최근작 <S.O.S-Adoptive Dissensus>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지난 3월, 임민욱은 딱 이틀 간 관객들을 여의도 한강 유람선으로 초대했다. 마침 선착장 주변은 땅이 갈아엎어진 채로 엉망이었고, 그럼에도 군데군데 나와 있는 불꽃놀이나 장미꽃 행상들, 선착장 특유의 조악한 조명 장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약속된 정각 밤 9시, 유람선은 예정대로 출항했다. 물론 늦게 온 사람은 배를 놓쳐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열어 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미술관에 비하면 매우 불친절한 전시 방식이다.
시간을 잘 지킨 부지런한 관객은 을씨년스러웠던 선착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결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의 출발과 함께 선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해 노들섬,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지 및 중단된 잠두봉 선착장 등을 지나오는 동안 유람선 외부에 설치된 조명은 교각 구석구석, 강변의 아파트와 대형 빌딩, 공사 현장 등 한강 주변의 풍경을 쉴 새 없이 쏘아댔다.
또한 중간 중간에는 유람선 바깥의 특정 장소에 작가가 미리 준비해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보안관찰 대상자, 갈 곳 없는 연인, 거울시위대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은 가만히 앉아서 선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야경과 퍼포먼스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작품의 일부가 되어,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만끽했다. 동시에 관객들은 ‘한강의 기적’이나 ‘한강 르네상스’보다 더욱 진기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전시장을 한강으로 옮겨오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정도로 무모하리만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작가 임민욱. 사실 그는 예중, 예고, 여대라는 다소 ‘모범적’인 미술 교육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대학 시절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사회 분위기는 임민욱을 현실과 미술에 대한 괴리감에 빠트렸고, 그 즈음 까뮈나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졸업을 포기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떠나기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파리에 약 10여년 간 체류하면서 동료 작가들과 ‘제너럴 지니어스’라는 집단을 조직했다. 협업을 통해 디자인, 아카이브, 공공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귀국한 임민욱은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급진적인 작품들을 여럿 선보였다. 그 해 개최된 <도시와 영상_의.식.주>전에서 서울 시내에 버스 정류장의 홍보판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채웠고, 1999년 문예진흥원미술관에 <사회적 고기>,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주관적 이웃집>을 발표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3년 간 체류를 한 다음 2004년 ‘제너럴 지니어스’의 멤버이자 지금은 남편이 된 프레데릭 미숑과 함께 ‘피진 콜렉티브’를 다시 조직하고 대학로의 아르코미술관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일종의 현장 사무실을 차리고 미술관 방문객부터 노숙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작품 <LOST?>, 대안관광가이드북 <피진 버스 투어-가리봉동>을 발표했다.
공동 작업이나 액티비스트에 가까웠던 과거 활동에 비해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임민욱은 작년 연말에서야 단독 개인전을 처음 개최하게 되었다. <점프 컷>이라는 제목을 단 개인전에서 임민욱은 한국의 산업화 근대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건드리는 메시지를 던지며 미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근자에는 과거의 팀 형태가 아닌 ‘임민욱’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임민욱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 석자 밖에 내걸 게 없는 단독자로서, ‘어떻게 하면 겸허하게 나를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임민욱은 작업 속으로 내장시켜 오히려 질식을 피하려하는 것이다”면서, “공동 작업이 ‘사랑의 행정화’를 가져왔다면 개인 작업은 아무 것도 없을 때 시작되는 윤리적 질문과의 싸움이다. 최근 혼자서 진행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적 신화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나서지 않아도 여전히 타자로부터만 확인되는 나를 스스로 키우거나 줄이거나 하려는 형태이자 고민의 장치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필자가 앞으로 곱씹을 만한 말을 덧붙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대응할 수 있는 미덕은 부정과 긍정이 아닌 ‘인정’,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가능한 ‘침묵’이라고.
호경윤, 아트인컬쳐 수석기자
<원문 출처: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korean/artist/1180 >
김찬동 현재 한국미술계는 상업화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견제나 균형을 위해서는 비영리
전시공간이나 공공영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멀티미디어나 장르융합형의 새로운
작업을 꾀하는 작가들의 경우, 상업적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되는데 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지원프로그램이 있다면?
임민욱 사실 저는 기금을 받기 위해 사이트를 뒤지거나 정보를 잘 알고 있는 편이지 못합니다. 전시안을 제시하고
나서 전시 주최 측이 방법을 찾아 준 경우라 어떤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있는지 말씀드리기에는 역부족입니
다. 하지만 조금전에도 말했듯이 영향력과 규모에 비해서 장르융합형의 작업들은 공공영역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와 같이 개인적으로 비평과 실험에 대한 욕구가 강한 작업들은 제작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창작의 전반적 빈곤과 문화적으로 단세포가 되는 일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예술인은 흔히 말하듯
먹고 살려고 상상하지 않습니다.
김찬동 리버풀 비엔날레 참가 이후 전시에 관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임민욱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Art is action, Action is production’이라는 워크숍과 전시를 동시 진행하는 기획이
있는데 참여할 생각입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기억 등 로컬이슈를 들어보고 어떻게 한국작가인 제가
그 지점에서도 보편성과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갑니다. 2005년도의 뉴타운 고스트 비디오
작업이 해외 스크리닝 요청이 가장 많은 작업이었는데 그건 그 작업의 맥락이 그들의 현 상황에 견주어
공통되는 맥락과 현재도 여전한 이슈이자 공감할 여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전시도 마드리드의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날 한 공간'의 기억을 되살리고 위로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제스쳐인데요.
그 지역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위크숍이 선행된 기획입니다. 이 때도 비디오는 영화와 다큐사이에서
융통성을 가진 매체로서 충분히 상상을 도모하면서도 개입을 유발하는 이동성에 적합한 매체겠죠.
그렇게 증언의 눈을 수집하고 녹취하는 방식이면서도 고루함으로 내던져지지 않는 형식을 또 발명하는데
지속적으로 관심이 가네요.
김찬동 마지막으로 특별히 후배 신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 있다면?
임민욱 사르트르가 인간 존재에게 어떤 정의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하면서 하나의 존재로 정립된다는
말을 했죠.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중에서도 전방위를 선택하신 당신을 스스로 격려하길
바라고 제게는 그 외로움이 가장 값지고 멋져보인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김찬동 최근 해외에서 유학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 늘어나고 해외정보나 네트워크가 다양해서 국제적으로 진출할
기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좀더 경쟁력을 가지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임민욱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음.. 무엇보다 영어를 잘 해야겠고 해외인맥을 쌓고
늘 메일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자세와 평소 지식이 있으면 좋겠죠. 글로벌한 매너와 공격적 자세, 허그도
잘하면 금상첨화겠구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기가 약한지 그런데서 많이 피곤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경쟁력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전 영어도 잘 못하고 작업은 로컬에서 구체적 고리를 가지고 글로벌한
이슈의 문제제기를 관통시키는 편인데 경쟁력있는 작가들이나 작품들은 역시 추상성을 다루는 경우라고
조언하면 도움이 될런지요…
김찬동 여타의 방법들도 중요하지만 내용적으로 지역적인 소재로부터 글로벌 이슈를 도출해 내는 일,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임민욱씨의 경우, 문예진흥기금이나 아르코미술관의 전시지원 수혜경험이
꽤 많은 편인데, 실제로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이 개인창작활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경우는 어떤 경우였는지요?
임민욱 사실 지원이 없었다면 전시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개인적인 방침입니다. 수많은 미술기관들의
인력은 작가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아카이빙에 의해 위상과 직급을 갖고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데 왜 작가만
거기서 무상제공이 당연시되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도 미술사가 부여한 작가의
신화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기에 항상 시차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여기’가 중요하고 기금이나
지원은 상당히 기회가 많아졌다고 봅니다. 그건 많은 큐레이터분들의 열정과 동료작가들이 치룬 희생과
저항으로 이끌어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아르코 미술관에 피진컬렉티브가 만든 <로스트?>
컨테이너 공간과 작년 SOS 그리고 현재 작업 중인 비디오 <손의 무게>는 전시 지원과 기금 헤택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냈을 경우입니다.
김찬동 여전히 많이 바쁘시군요. 즐거운 비명으로 들립니다. 2003년부터 현재의 남편인 프레디릭 미숑과 함께
`Pidgin`이라는 예술공동체를 창립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초기엔 공동작업을 다양하게 펼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로부터 현재까지 임민욱의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과 방법은 무엇인가요?
임민욱 허구와 현실은 한 몸이라는 생각과 ‘따로 또 같이’라는 방법론을 쓴다고 할까요? 양가적이며 복합적인 관점과
태도를 늘 속도의 풍경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구요. 사람은 누구나 사라진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그 저항과 비밀에 대한 희망이 작업의 모티브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요.
결국 기억을 둘러싼 발언이자 개입이죠. 그리고 이건 아마도 한국의 '빨리빨리'와 이분법적 좌우 대립이
극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관찰을 바탕으로 작업을 통해 경계를 질문하게 하고 만들어 나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쟝르에 구속되지 않고 만나고 들어보고 얘기해봐서 서로의 시너지가 생긴
결과로 작업이 생기면 행복해지지요. 현재도 무용, 음악, 다큐의 방식을 총체적 연극과 같이 시도하고
영상으로 실험하고 있으며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방안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김찬동 금년 리버풀비엔날레에는 어떤 작품을 출품하게 됩니까? 기존의 작품이외에 신작을 한점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내용의 작품인가요?
임민욱 '손의 무게'라는 제목의 작품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비디오 작품을 통해서 비평과 실험적 요소를 갖추는데
노력을 쏟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은 주로 허락되지 않는 공간 또는 기대를 져버린 공간,
사라질 공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장소들을 비밀스러운 관광단체의 순례로 드러내고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공간과 상황을 열감지 카메라로 읽어내는 내용입니다. 지난번 SOS 한강 유람선상에서의
퍼포먼스가 빛으로 도시를 스캔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온도로 스캔되는 풍경이 또다른 기억과 감각을
일깨워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Q: 당신의 작업을 보면 한 개인의 일상을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의 소통에 많은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임민욱에게 소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A: 사실 나는 소통을 꿈꾼다는 말에 불편함이 앞선다.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려는 정치가나 통신사의 홍보전략 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굉장히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인데, 미술 작업은 작품 자체가 '설명'될 수 없는 형용 이전의 상태를 간직하고 있다. '말'로 존재하지 않고 일종의 '말'에 저항하는 상태로.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말'의 가능성으로도 통한다.
나의 경우, '두 마리의 토끼 잡으려다 다 놓친다'는 말을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여기서 한 마리는 소통, 또 한 마리는 모든 논리와 합리주의의 포착에서 벗어난 녀석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둘을 다 잡고 싶다. 그래서 두 마리를 다 놓치고 없음을 확인한다. 작업은 그 없음의 확인이다. 그래서 다시 시도해본다. 하지만 두 마리 다 놓치는 연속선상에서 작업은 역설적으로 삶과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예술에 귀착된다.
소통,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 관심은 소통에 어떤 형태를 만들어보는 것, 형식을 발명하는 것에 있다. 통신사와는 다른 소통혁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꾀와 형식의 발명인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말을 배운 다음에는 권력의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즉, 미적 판단을 저급, 고급 등으로 구분하는 것을 학습하기 시작하면서 소통이 한정되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가운데 미학적 헤게모니에 반대하고 언어의 패권주의를 깨려는 노력이 창작활동과 연결된다. 그런데 이 노력은 형식의 발명과 맥을 같이 하지 않으면 물리적 소통은 가능할지언정, 지향점을 잃은 소통이 되고 만다. 지향점이 없으면 소통은 주위를 맴돌게 되고 결국 비루한 일상만 남게 된다. 누구나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시대라 전파하는 것은 손쉬워졌다. 하지만 정작 할 말은 못하고 누구나 해도 되는 말, 그래서 안 해도 되는 말, 못 들어도 그만인 말만 난무하고 전파된다. 예를 들어 색깔론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아마도 그로인해 <불의 절벽 2>가 시도된 것 같다. 창작활동은 그렇게 소통에 대한 도전과 논리와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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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own Ghost from minouk lim on Vimeo.
10'45", Single Channel Sound & Video Projection, 2005
Text by Adnan Yildiz
Exhibition Catalog "An Atlas of Event", 2007, Fundação Calouste Gulbenkian, Lisbon
Before performing for an organisation that works for Afghan women’s rights, Peaches was talking about how she felt: “It’s about how you need nothing to entertain everything… I want to bring people to the party who haven’t been included.” What Peaches transmits to her audience is very similar to what Minouk Lim is highlighting in her video installation New Town Ghost (2005), and both women are particularly unique and sensitive in describing their zeitgeist. Generations that lose their understanding of definitions need heroes or heroines to reformulate their existential crises, without them neither audience nor citizens can survive.
In the video, we see a young woman as a slammer and a drummer who performs on top of a truck. Her short hair and wild eyes convey her aggressive demeanour. She is hanging around the streets of Yeongdeungpo in Seoul. For more than a century that part of the city has been an important industrial area, and recently it has been transformed into a ‘new town’. Yeongdeungpo is a symbol not only for Minouk Lim but also for other Koreans of the same generation. Lim transforms the perception of space into a dystopian form of hope, a retrospectively sarcastic belief for a better future and a sort of resistance to change. During her trip, she uses a megaphone to read a text that talks about the new mall, the housing complex and the economy of the ‘new ghost town’. New ghosts and new hosts for those ghosts…
As part of a number of collective activities and experimental collaborations (General Genius, the Pidgin Collective, etc.), Minouk Lim searches for possible positions of constructive criticism and ironic criticality. Through her works, she takes a more active stance towards the absurdities and problems of reckless development and the financially driven landscapes of our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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