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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UP 2014. 8. 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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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갈수록 힘이 넘치고, 점점 더 생명력이 불거져 나오는 듯하다. 꿈틀대는 것 같은 문신 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탐구해온 작가 김준(국립 공주대 교수). 혹시 그도 완벽한 인간을 재현하고픈 욕망과 집착이 생긴 것은 아닐까. 

서울 연희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을 때 김 작가는 벌떡벌떡 가슴이 뛰는 남성상 옆에서 기자를 맞았다. 디지털 영상 작품이지만 손을 대면 탁 튕겨낼 만큼 팽팽함이 느껴졌다. 기가 전해진다고나 할까. 

그는 5월 12일부터 6월 9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캔버스 인터내셔널 아트 갤러리를 필두로 6월 서울 아트링크 갤러리, 9월 뉴욕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 등에서 잇달아 여는 세 전시를 준비하느라 쉴 틈이 없다고 했다. ‘행복한 비명’이다. 그런데 그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갤러리에서 먼저 요청해 전시한다고 했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의 선두주자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암스테르담 전시 개막을 막 끝내고 돌아온 김 작가는 “수금 좀 해왔다”는 말로 현지 반응을 설명했다. 

VIP 대상 오픈 행사에서만도 40명 이상의 콜렉터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엔 지난 2006년 처음 나갔는데 당시 반응이 아주 좋았던지 캔버스 인터내셔널 아트 갤러리에서 다시 초청을 했다. 6년 만에 다시 하는 것이다. 그곳에선 한 피자업체가 내 작품을 이용한 광고를 모든 시내버스에 붙이려다가 막판에 불발이 됐을 만큼 반응이 뜨겁다.” 

아시아와 남미 호주 작가들의 작품을 유럽에 소개하고 있는 캔버스 인터내셔널은 김 작가의 작품을 상당히 좋게 보는 것 같다. 갤러리 측은 그의 작품을 2006년 뿐 아니라 2007년에도 소개했다. 특히 2006년 발간한 ‘NOW KOREA’라는 제목의 한국 동시대미술(Korean Contemporary Art) 소개 책자의 표지를 김 작가의 작품(Dog, 2006, digital photography, edition 5, 140x100cm)으로 장식했을 정도다. 당시 김 작가는 ‘Dog’ 외에 ‘Dragon’ ‘Monkey’ 등 십이지신상으로 작업을 했다. 

뉴욕과 베버리힐스, 홍콩 등에 갤러리를 두고 있는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도 김 작가의 큰 후원자다. 김 작가는 이미 선다람 타고르의 뉴욕과 베버리힐스 갤러리에서 2010년에 전시를 했고 지난해엔 홍콩에서도 전시를 했다. 

“홍콩에선 ‘drunken(취한)’ 시리즈로 전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던지 이번에 뉴욕에서도 전시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연이어 여는 전시에 어떤 차별성을 둘 것인지 궁금했다. 

“암스테르담 전시에선 ‘blue jean’과 ‘drunken’ 시리즈의 새 작품들을 내놓았다. 지난해부터 블루진 블루스를 작업하고 있는데 서울 전시 주제는 블루진 블루스로 잡았다. 청바지와 도자기 작품이 위주가 될 것이다. 뉴욕 전시에선 ‘fragile(깨지기 쉬운)’ 시리즈를 주로 내놓을 생각이다.” 

막장까지 갔다 기사회생 

지금은 밀려드는 전시 요청을 따르기에 바쁠 정도고 작품도 잘 팔려 제법 여유가 생겼지만 이런 날이 오기까지는 오랜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1994년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5년까지 가장 화려할 수도 있는 30대를 어렵게 보냈다. 말로는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책도 많이 봤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았던 것. 

“30대는 아주 힘든 시기였다. 10여 년을 바늘로 (문신)작업을 했는데 그 작품들은 팔리지 않았다. 나이는 먹어가지, 앞은 막막하지….” 그는 당시 상황을 “막장까지 갔다”고 표현했다. 

그가 잡은 화두가 조금은 생경한 것이어서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김 작가는 사람들의 모든 문제가 ‘몸’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몸’을 화두로 삼아 왔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게 문신이다. 

그는 문신의 육체적 측면이 아닌 정신적 측면을 추적해 왔다.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 문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풀려고 했던 것. 문신은 육체에 장식을 하는 것이지만 상처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그는 이를 ‘각인’으로 이해한다. 육체에 새긴 문신처럼 우리의 정신에 각인된 것을 찾는 게 그의 작업이다. 

그는 문신의 육체적 측면이 아닌 정신적 측면을 추적해 왔다.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 문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풀려고 했던 것. 문신은 육체에 장식을 하는 것이지만 상처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그는 이를 ‘각인’으로 이해한다. 육체에 새긴 문신처럼 우리의 정신에 각인된 것을 찾는 게 그의 작업이다. 

그러나 문신의 소재인 ‘살’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초기엔 먼저 인조 ‘살’을 만들고 그 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작업을 했다. 그에겐 ‘살’이 캔버스였고 바늘이 붓이었다. 당연히 보통 사람들의 눈엔 초기 작품은 튈 수밖에 없었고 돈이 되지 않았다. 고기 덩어리와 살점, 거기에 반문화 폭력성 같은 코드까지 곁들인 작품에 선뜻 손을 내밀 ‘고객’이 많지 않았던 것. 

그가 지난 2003년 8월 하순부터 9월 초까지 아티너스 갤러리에서 연 ‘문신가게’라는 전시회 안내장 문구는 그때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문신가게는 문신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지 못하고 범죄 취급하는 한국사회에서 언젠가는 합법적인 문신시술소가 생길 거라는 가정 하에 오픈하는 가상의 타투샵이다. …문신가게는 갤러리 안에 있지만 갤러리가 아니기를 꿈꾼다.’ 

당시 얘기를 하다가 김 작가는 “우리 가훈을 보여 주겠다”며 현관에 걸린 초기 작품을 소개했다. 인조 피부에 털(毛)로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를 새긴 작품이다. 

“(우리 가훈은) ‘양심(良心)에 털 나자’다. 양심에 털 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서….” 

그가 내민 또 다른 초기 작품 역시 인조 피부에 털로 불타는 모양을 수놓은 것이다. “이 작품은 ‘분노하는 털’이다. 사람들은 털에는 신경이 없다고 함부로 자르곤 한다. 그래서 화가 나니 함부로 자르지 말라는 거다. 분노하는 느낌의 털을 통해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다음에 그는 ‘삼양라면’이란 작품을 보여줬다. 실제 삼양라면이 아니라 ‘살’에 삼양라면 모양을 문신한 ‘How Much?’ 시리즈 작품이다. “이 작품 가격은 얼마일까. 라면 값과 같다. 그렇다면 옆의 40평짜리 아파트 도면 작품의 값은 얼마일까. 그건 40평 아파트 값이지.” 그는 이런 작품들로 예술과 분리된 생활을 그렸다. 카드 돌려막기를 할 정도로 힘들 때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살에 카드를 새기도 했다. 사채를 쓰고 신용불량 직전까지 갔다가 상황이 풀렸다. 

“어느 날 게임회사에서 불러서 갔다. 신작 게임을 내는데 원화 스케치를 해달라는 거였다. 궁여지책으로 했다. 그런데 거기서 3D를 알게 됐다. 3D 기법을 알게 되니 완전히 딴 세계가 보였다. 무궁무진했다. 내 상상력을 구현해줄 어마어마한 세계였다.” 

피부를 재현할 만큼 세밀한 작업을 하던 그에게 3D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소재였다. 

거기서 김준 작가는 이제까지 해온 아날로그 작업을 접고 디지털로 전환했다. 2005년의 일이다. 

그는 3D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을 주는 스킨을 재현해냈고 거기에 문신을 새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날로그 작업을 할 때는 힘들었는데 2005년부터 디지털 작업을 하면서 풀리기 시작해 빚을 다 갚게 됐다”고 김 작가는 밝혔다. 

경제 사정이 나아진 2006년 그는 결혼에 골인했다. 그해 만나 그해 결혼했다고 한다.“헌팅 했지. 삼청동 친구 카페에 친구로 왔는데 대쉬해서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도달했다. 따지는 꼴 보기 싫어서 그랬다. 더 따지면 못갈 것 같아서.” 

그는 지금 잔디밭이 있는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은 2008년에 샀다. 결혼이랑 비슷했다. (돈이) 조금 있을 때였는데 무리해서 질렀다. 그랬더니 해결되더라. 계산하는 게 싫어서 더듬이로 결정했는데…. 아마 머리로 계산해서 했다면 피곤하고 실패했을 거다.” 

변함없는 화두 달라지는 작품 

디지털로 바꿨지만 그는 처음 화두로 정한 ‘몸’, 다시 말해 ‘의식의 문신’ 만큼은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다만 작품은 연도별로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작품엔 세 사람이 등장하는 게 많은데 ‘we’란 이름이 붙었다. 그것은 ‘끼리끼리’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구찌나 BMW 등 명품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끼리끼리 놀지 않나.” 

그런 사람들의 의식을 빗대 집단끼리의 갈등을 표현하고 꼬집었다는 것. 

2006년 작품엔 두 남녀가 얽힌 에로틱한 장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듀엣(duet)에선 운명적 사랑이나 궁합 등의 의미를 십이지신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2008년 작품엔 다수의 사람이 얽힌 채 바닥에 엎드리거나 누운 게 많다. 그는 이들 작품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버드랜드(bird land)를 제목으로 달았다. 

이즈음에 그는 ‘이상봉’이란 작품도 내놨다. 

“3년 전 이상봉 선생님이 내 작품을 구입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상봉 선생님의 이미지를 따서 작업을 했다. 나중에 이 선생님이 그 이미지를 패션쇼에 사용하기도 했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오랫동안 추구했던 ‘살’ 작업을 떠났다. 그해 ‘fragile’이란 이름의 인체 형상을 한 도자기 시리즈를 거쳐 2011년에는 술과 커피, 화장품 등을 접목한 ‘drunken’ 시리즈를 내놨다. 인체에서 도자기로 넘어갔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술과 커피, 화장품 등으로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블루진 블루스를 추가했다. ‘어떻게 하든 젊어지고 싶은 사람들의 집착’을 다룬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한 가지 화두를 파고 있지만 작품은 쉼 없이 바꿔나간다. 깊이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변화까지 모색하는 게 그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다.
 

김준 직가 

스킨이나 모니터를 캔버스의 연장으로 생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1966년 서울 출신으로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현재 국립공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부터 매년 평균 2회 정도 해외 전시를 할 정도로 정열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그의 작품이 출품됐고, 타고르의 후손이 운영하는 미국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와 이태리 박스아트 갤러리 등 여러 갤러리가 그를 작가리스트에 등재하고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1호(2012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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